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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과학교육 :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과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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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과 풍요로운 삶 위한 첫걸음
‘미래의 원동력’ 학생들의 과학사랑 길러내는 힘


글 | 박원용 교수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국 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요즈음 어느 때보다 뜨거움을 느낄 때가 많다. 학기 첫 주 학생들의 자기소개 시간에도 두세 명은 꼭 본인이 K팝이나 K드라마 팬임을 고백하는 일이 있고, 요즘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나를 한국어로 어떻게 호칭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는 학생들도 있다. 이처럼 몇 년 사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지만, 사실 한국 가수나 드라마보다 더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았던 것은 바로 한국의 특별한 교육 시스템이다. OECD가 주관하는 PISA 평가가 처음 시행된 2000년 이래 한국이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으면서 한국 학생들의 높은 성취도의 '비결'을 알아내려는 외신 및 외국 교육학자들의 관심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게다가 요즈음은 '기생충'이나 '스카이 캐슬'같이 한국의 교육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드라마들이 해외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면서 대중적으로도 한국 교육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교육제도는 각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기 때문에 한 국가의 교육제도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반대로 자신이 오랜 시간 익숙해진 제도를 외부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평가와 진학 시스템은 어느 나라에서든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국가 간 차이가 극심한 영역이다.


한국에서 물리교육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나서 한국 과학교사의 평가활동을 주제로 영국에서 박사 논문을 작성하던 초기에, 내 지도교수님들은 교사에 의한 학생 평가가 대학 진학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는 개념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하셨다. 영국 교사도 평가를 하지만, 교사 평가는 학교 내부 용도 또는 학생 지원 용도로만 사용되고, 진학은 상급학교의 자체 평가나 국가 수준 평가(A-Level)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즉 영국에는 '내신'이 없는 셈이니, 우리나라의 내신 제도가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사가 학생의 진학에 반영되는 고부담(high-stakes) 평가를 담당했을 때 교사 간 차이, 학교 간 차이, 그리고 평가의 타당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의 문제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익숙한 논쟁들을 영국 맥락에서는 고민해 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영국에도 한국의 관점에서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가 많은데, 예를 들면 중등교육 마지막 2년(16∼18세) 동안 본인의 A-Level 선택과목 서너 가지 이외에는 전혀 수업을 듣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적어도 수학이나 문학 정도는 모든 학생이 공부하는 필수 과목이 아닐까 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한국처럼 다양한 교과를 통한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는 제도의 관점에서는 낯설게 보이는 교육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사실 영국 교육제도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간에 차이가 있는데, 이 글에서 '영국'은 '잉글랜드'의 의미로 쓰도록 하겠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한 지난 가을부터, 영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 출신의 대학 신입생들과 함께 '세계의 교육제도' 수업을 맡아 강의하면서 독일, 프랑스, 핀란드, 중국, 한국, 쿠바, 브라질 등 다양한 나라의 교육제도와 현실을 공부하고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과학교육'을 한 사람의 관점과 경험으로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수업에서 학생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한국을 떠나 공부하고,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한국 과학교육의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외국(주로 영국) 과학교육의 현안들과 비교하여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양면적인 과학교과 위상
과학 공부, '개인의 선택'으로 남겨두어도 될 것인가?


앞서 언급한 영국 대입시험인 A-Level의 선택과목은 40개 이상인데, 학생들이 자유롭게 세 과목을 선택했을 때 과연 과목별 선택률은 어떻게 될까? 2020년의 결과에 따르면 1위부터 4위까지가 수학, 심리학, 생물학, 화학 순이었다고 한다. 일부 대학교에서 특정 과목 성적을 필수로 요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선택률 순위를 학생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과목의 순위로 해석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적어도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자연계 과목들의 위상이 상당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 5세부터 16세까지 적용되는 국가교육과정에서 과학은 영어, 수학과 함께 3가지 '핵심교과'의 하나로 모든 학생이 매년 수강하는 과목이다. 영국 중고등학교 수준에서 '주요과목'이라고 볼 수 있는 EBacc (English Baccalaureate) 여섯 과목의 교사 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과학(정보 포함) 교사가 모든 과목을 통틀어 가장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면에서 핵심과목으로 자리 잡은 영국의 과학 교과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과학 과목의 위상은 양면적이다. 왜 국어나 수학 다음에는 '탐구'가 붙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오랫동안 '과학탐구'는 '사회탐구'와 함께 두 개의 선택 영역 중 하나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과학 과목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 정도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는 최근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과학 또는 사회 과목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의 비율은 영어·수학 각각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교육 진흥을 위해 2011년 과학교육진흥법을 도입하고(최근 과학·수학·정보교육진흥법으로 개정), 과학고등학교, 과학영재학교, 과학예술영재학교 및 과학기술원 등을 국가적으로 지원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에 비해 일반 초중등교육 현장에서 과학 교과의 비중이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부족하다는 점은 국가 차원의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교과 간의 사이좋은 공존이나 학습 부담 경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사회에서 과학 공부를 '개인의 선택'으로 남겨두어도 될 것인지에 대한 국가적 논의가 요구된다. 리즈 대학교의 과학교육학자인 에드가 젠킨스의 2019년 저서 "모든 이를 위한 과학: 영국 학교 과학의 설립을 위한 투쟁(Science for All: The struggle to establish school science in England)에서는 과학이 영국 학교에서 처음부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던 것이 아니며, 현 지위를 획득하기까지 거쳐 왔던 열띤 논쟁 및 끈질긴 노력이 있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우수한 과학교사의 보고…
지나친 경쟁과 불균형 주의해야


최근 보고된 여러 국제 통계자료에서 학생들의 성취수준과 더불어 가장 돋보이는 한국 교육의 단면은 교사의 높은 사회적 지위나 직업 만족도이다. 영국 바키 재단(The Varkey Foundation)에서 2018년 조사된 국가별 교사 지위 비교 자료에 의하면, 한국 교사의 사회적 지위는 직업 선호도, 주당 근무시간, 급여 등을 고려했을 때 조사대상 35개국 중 6위로 나타났다. 교사가 되기 위해 높게는 십수 대 일의 경쟁을 거쳐야 하고, 교사 임용 후 자발적 퇴직 비율이 극히 적은 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우수한 과학교사를 모집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국제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직업으로서 교사의 지위와 선호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유럽 및 북미 국가의 관점에서는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영국을 포함해 미국, 캐나다 등 다수 서구 국가들의 과학교육학자들에게 최근 몇 년간 가장 긴급한 의제는 교사 수급과 유지이다. 영국의 경우를 보자. 학부에서 모학문을 전공한 졸업생들이 1∼2년간 단기간 교육을 거쳐 해당 과목 교사로 투입되는 영국의 교사양성 시스템에서, 산업수요가 많은 이공계 졸업생이 교직을 진로로 택하는 비율은 극히 저조하다. 특히 물리학의 경우 지속적인 교사 부족에 정부는 외국(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의 교사 이민 지원, 교사양성과정(PGCE) 등록금 면제, 물리교사 특별 추가수당 등의 장려책을 발표하고, 타 과목 교사들이 재교육을 통해 물리학 교사 자격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있다. 영어권 주요 국가들의 이러한 사정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과학교사의 사회적 지위나 수급 상황은 상대적으로 낙관적이다. 그러나 지나친 임용시험 경쟁률로 인한 사회적 손실, 선택과목 불균형에 따른 학교 현장에서의 수업시수 배분 문제 등은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교육기회 불공평 심화되고 있는 사회
다양한 배경의 학생 위한 적극적 지원 필요



국제 교육 비교 연구에서 한국 교육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사교육의 영향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는 ‘학원’이나 그 비슷한 것들이 없다.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출신 학생들은 학원의 개념을 금방 이해하지만, 유럽 학생들은 학교를 마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혹은 온라인으로) 수업료를 내고 강의를 듣는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번 설명해 주어야 한다. 여러 가지 사교육 형태 중에서 '개인과외'는 영국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영국의 과외(tutoriong)는 학교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특히 코로나19 등의 사정으로 학교에 제대로 출석하지 못한 학생들이 학업을 따라잡기 위해 받는 것으로, 한국의 과외와는 그 목적이 크게 다르다. 대부분의 영국 학생들은 평생 한국적인 의미의 '사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학원이나 과외가 없다고 영국에서 과학교육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국의 전통적 명문대학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신입생 절반을 일부 명문 사립 기숙학교 출신 학생으로 채웠으나(영국에서 '사교육'[private education]이라고 하면 보통 사립학교 교육을 의미한다), 다양성을 통한 학문 발전을 취지로 계속해서 공립학교 출신 신입생 비율을 늘려가고 있다. 한편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팀에서 10년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많은 영국 학생들이 과학에 관심이 있고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환경과 성장배경, 사회경제적 여건 등이 진로로 과학을 택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교육기회의 불공평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할 때, 어떤 학생들이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지를 이해하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와 교육청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세계적 경제·문화 강국이 된 대한민국…
맞춤형 과학교육 연구와 지원 절실


세계적 경제·문화 강국이 된 2022년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게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도 지난 수십 년간 괄목할 정도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과학교육도 그 내용과 지원 규모 면에서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이제 선진국 ‘모범사례’들을 우리 과학교육에 이식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문화적·사회적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과학교육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몇 년 전 발표된 "미래세대를 위한 과학교육표준"에서 민주적 인간상을 토대로 과학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재조직하여 제시한 점은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의 과학교육 제도를 공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을 거꾸로 돌아보는 일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수백 년의 근대적 과학교육 전통을 가진 (그리고 근대과학의 발원지이기도 한)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역사와 현재를 통해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강점과 과제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되고, 지나온 고민의 흔적들을 통해 새로운 방향 탐색의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몇 년간 외국 과학교육을 경험하고 연구·수업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점은,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과 학교 현장에 반영된 과학 과목의 비중은 과학기술의 사회적 시급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습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능정보 사회의 국가 경쟁력과 개인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첫걸음은 더 많은, 더 다양한 학생이 과학을 오랫동안 배우고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지원과 노력이다.


글 | 박원용 교수
박원용 교수는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University of Oxford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국 University of Southampton에서 조교수로 근무하면서 과학의 본성 교육, 과학사·과학철학교육, 현대물리학교육, 과학교육정책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