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EDUCATION ISSUE

학교에 ‘과학부’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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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합리적이고 당위성 지닌 학문, ‘과학’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 속 과학의 혁신과 개발이 국력을 가르다


글 | 김선빈(前 국립과천과학관장)


학교에 ‘과학부’가 왜 필요한가?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천재일 가능성이 높다. 천재들의 공통점 중 하나인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교과목은 쉽게 말해 국, 영, 수, 사, 과, 음, 미, 체로 구별한다. 그런데 그 많은 과목 중에 왜 ‘과학부’만 있어야 하는 거냐고 따져 보자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상급학교 진학에 필요한 시험의 점수비중으로 본다면 국어, 영어, 수학이 더 중요하니 그것들에 대한 부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없고, 학생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과학부’가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 문제를 미처 생각 못한 사람들도 “어, 이제 보니까 그러네?”하면서 신기한 현상 하나 깨달은 것 같이 맞장구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과학기술부 공무원을 30년 역임했다. 처음 10년은 과학기술부 공무원 된 것을 후회했다. 이 세상의 모든 사고나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달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다음 10년은 위에서 떨어지는 업무에 치어서 정신없이 보내느라 후회할 겨를이 없었다. 마지막 10년은 과학기술이 뭐지? 과학을 왜 배워야 하지? 과학 공부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거지? 과학과 기술과 공학은 각각 어떻게 다르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고 나 스스로 답을 찾다가 끝났다. 다행히 그 질문들은 일반 국민과 초·중·고 선생님들을 상대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답을 정리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나중에 STEAM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진1] 2008년 11월 14일, 국립과천과학관 개관식 치르고 며칠 지나 첫눈이 소복이 내렸다. 직경 25m 천체투영관을 관람하기 위해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있다. 과학관설립 책임자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과학에 목말라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힘들었던 세월이 보람으로 변했다. (사진출처: 국립과천과학관)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
과학기술, 현실적 국력과 문명의 차를 가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서양문명이 지배하고 있다. 황하,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에 존재했던 고대문명은 지금 유물에 흔적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고대문명은 르네상스, 종교개혁, 시민혁명, 산업혁명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의 눈부신 문명에 이르렀다. 오늘날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먹고, 자고, 입고, 일하는 것 모두 서양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따라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서구열강 국가들이 강제로 식민지 점령해서 그렇게 하라고 시켰기 때문인가? 아니다. 과학기술의 우월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서양문명은 과학기술문명이다.


그 증거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가 왜 일본한테 임진왜란으로 짓밟히고 한일합방의 수모를 당했는지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우리의 칼과 활은 일본의 조총과는 게임이 안 되었다. 더욱이 조선을 삼키려고 들이 밀은 군함과 총포의 신무기는 우리를 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 속에서 만세를 부르는 동안에 일본은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국력을 키우고 영국과 프랑스 같은 강대국으로 변해 있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일단 접어두고, 현실적으로 국력과 문명수준의 결과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현실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조선의 26대 임금 고종(재위 1863~1907)과 일왕 메이지(明治 재위 1867~1912)는 1852년생 동갑이지만 국가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랐다. 고종은 망국의 군주로, 메이지는 부흥의 군주로 남았다. 세상은 변하는데 조선은 중국 중심의 전통질서에 매달렸고, 메이지는 사무라이를 진압하고 근대화의 길로 달려갔던 차이가 있다. 근대화란 무엇인가? 많은 현상을 말할 수 있지만 공통분모는 ‘과학화’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상의 역사를 살피다보면 일본 과학자 중에는 초기부터 노벨상 후보자로 많이 추천되고 있었을 정도로 일본의 과학기술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1922년 아인슈타인이 일본의 초청을 받아 한 달여 동안 순회강연을 하면서 상대성이론 열풍이 불 때 우리는 어떤 상태였는지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미어진다.


일본의 근대화는 쉽게 말해 유럽문물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그때의 유럽문물이 무엇이었는지를 가장 명쾌하게 보여주는 것이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세상 처음으로 열린 ‘만국 산업제품 대 박람회(The Great Exhibition)’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산업최강국의 문명과 부유함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다. 괴물 같은 증기기관차는 물론이고 자동방적기, 방직기, 선박엔진, 1144톤의 수압기, 기중기 등이 관람객들을 완전히 압도했다. 영국 국내나 유럽대륙의 사람들조차도 거기를 직접 가보지 않고는 상상이 안돼서 사람들 간의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만국 대 박람회’에는 중국을 포함해서 총 25개국이 참여했지만 영국을 제외한 다른 참가국들은 대부분 농산물과 수공업제품이었다. 그 때 6개월 가까이 행사를 치르고 난 뒤, 전시된 물건 중에서 과학기술 제품은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에, 생활 공예품과 예술장식품 등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지금까지도 전시되고 있다.


영국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터전이었던 지중해로부터 멀리 떨어진 유럽의 변방 국가인데 산업혁명의 발생지가 되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여러 가지 복합요소가 있겠지만 1660년에 만들어진 ‘왕립협회(The Royal Society)’에서 찾을 수 있다. 정식명칭은 ‘자연과학 진흥을 위한 런던 왕립협회’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유용한 지식을 수집하고 개선하며, 그것에 기초한 합리적인 철학체계를 만들어 가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협회는 왕실이나 정부에서 만든 단체가 전혀 아니다. 물질이 존재하고 운동하고 변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얘기를 나누다가 회칙을 정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커져갔다. 뉴턴, 다윈, 프랭클린, 아인슈타인, 패러데이, 보일, 와트, 플레밍 등 세계 역사에 빛나는 쟁쟁한 과학자들이 이 협회에서 활동했다. 『철학회보』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학자들 간에 연구우선권을 확인하는 기능과 함께 과학자들 간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뉴턴이 프리즘 2개로 백색광이라고 믿었던 햇빛 속에 색깔이 다른 광선이 있고, 그 광선들은 굴절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실험’ 결과를 1672년 초 『철학회보』에 발표했고, 현미경의 발명자 로버트 후크와 우선권 논쟁을 벌였던 사건은 유명하다.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영국 사람들의 과학정신은 1825년에 시작된 ‘크리스마스 강연’에서도 나타난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에서처럼 영국에서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성탄을 축하하고 캐롤송 부르고 파티하느라 흥청거리며 들뜬 시간을 보낼 것 같지만, 상류계층의 지식인들은 과학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즐겼다. 영국의 힘이 거기서 나왔다. 1855년 12월 27일 전자기유도 현상을 발견한 마이클 패러데이의 크리스마스 강연은 특히 유명하다. 대영제국을 완성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은 자기 아들 두 명을 데리고 패러데이가 강연하는 걸 듣는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있다. 그 아들 중 한 명은 나중에 빅토리아 여왕의 뒤를 이어 에드워드 7세 국왕(재위 1901~1910)에 오른다. 왕실의 가족들이 강당에서 과학강연을 듣는데 거기에 같이 참여한 사람들도 고관대작의 가족들일 거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걸 보면서 자란 사람이 왕이 되었으니 대영제국은 어쩌다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2] 1855년 12월 27일 마이클 패러데이의 크리스마스 강연모습. 패러데이 강연자 맞은편 맨 앞 가운데 앉은 사람이 앨버트 공이고 좌우에 아들 둘이 보인다. 이 강연이 있었던 런던의 왕립연구소 강당은 지금도 당시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고 대중강연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당위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학문, ‘과학’
부강한 국가 양성 위한다면 절대 소홀히 해선 안 돼


과학은 합리성(合理性)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합리성이란 이치(理致)에 맞아야 한다는 건데,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실험이나 증명과정 등을 근거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실험이나 증명은 누구나, 언제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나 시설 등이 필요하고, 체계와 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온다. 또 그래서 우리나라는 헌법에 국가가 반드시 그런 것들을 하라고 책무로 정해 놨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음은 물론, 영국과 같은 부강한 나라를 꼭 만들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1987년에 제정된 우리 헌법 제127조에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는 과학기술부가 있고, 국립서울대학교와 같은 국립종합대학교가 각 지방마다 설립된 것과는 별도로, KAIST와 같은 인력양성과 연구를 목적으로 한 과학기술원이 4개가 있다. 또한 KIST와 같은 과학기술분야 전문 연구기관이 대덕연구단지를 비롯하여 전국 많은 곳의 연구실에 불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일반 국민의 과학정신을 높이기 위해 국립과학관이 전국에 5개, 지방자치단체나 개인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공·사립 과학관이 100개를 넘긴지 오래됐다. 이런 맥락에서 초·중·고등학교의 내부조직에 ‘과학부’를 두어 학생들의 과학적 소양을 배양하는데 책무를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4년제 종합대학교인 ‘서울산업대학교’가 2010년에 ‘서울과학기술대학교’로 학교이름까지도 자진해서 바꿨다. 과학기술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그 분야의 급속한 신기술개발 추세, 그리고 치열한 세계적 경쟁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미래인재를 키우는 초·중·고등학교에 ‘과학부’의 존재를 다른 학과목과의 형평성을 내세워 의심하고 소홀히 취급하는 것은 목욕물 버리다가 옥동자 아기까지 버리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글 | 김선빈(前 국립과천과학관장)
김선빈 前 국립과천과학관장은 명함을 10가지 갖고 다니면서 누구를 만나도 스토리텔링을 했다. 그것을 『별난 관장님의 색다른 과학시간』이란 책으로 펴냈다. <무한 상상실>을 모범적으로 설치해서 Google로부터 후원금 86만 불을 받았다. <전기 전자 문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라는 주제로 34가지 전시물을 만들어 STEAM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