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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작은 거인, 소나무재선충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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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소나무는 산림청이 10년마다 실시하는 의식조사에사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30여년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소나무 에이즈라는 재선충의 확산으로 몇 년안에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는 소나무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 잣나무 등에 기생해 나무를 갉아먹는 선충으로 솔수염하늘소를 통해 나무에 옮는다. 일본, 타이완, 대한민국에서 출현했으며, 무엇보다 소나무에 치명적인 심각한 해충이다.


이 세상은 유형과 무형의 것들로 이루어 져 있고, 또 유형의 것들 중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로 구분이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들 중에는 꽤나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어 인간의 삶에 예기치 못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소나무재선충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나무류를 급격하게 말라 죽게 하는 생물체로서 우리의 산림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해충들 중 하나이다.


소나무재선충을 알아보기 이전에 선충이라는 생물의 정의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선충을 영문으로는 ‘Nematode’라고 표현되며, 이를 그리이스 어원으로 풀어보면, ‘nema’(=thread, 실), ‘tode’(=~like, 과 같은), 즉, ‘실과 같이 생긴 가늘고 긴 생물’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선충’을 한자로 풀어 보아도, 즉 실 ‘線(선)’자와 벌레 ‘蟲(충)’자가 합하여 이루어진 단어로서 동일한 뜻임을 알 수 있다. 소나무재선충(Bursaphelenchus xylophilus)은 길이 약 1mm미만, 체폭 약 20μm 크기의 나무 조직 속에서 기생하는 선충의 한 종류이다.


소나무재선충은 원래 우리나라에 있었던 생물종일까? 소나무재선충은 우리나라 토착종이 아니라 외국에서 유입된 ‘외래 침입종’ 중의 하나이다. 외래 유입종의 특징은 새로운 생태계에서 일단 정착이 되면 대 발생으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으며, 특히 소나무재선충은 단 기간 내에 큰 나무를 고사시키는 기작을 가지고 있어서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소나무 에이즈 ‘재선충’ 전국으로 확산 사태


소나무재선충의 최초 보고는 1934년 미국의 루이지애나 지역이며, 이후 1900년대 초에 일본 나가사키 지역으로 유입되었고, 우리나라는 1988년에 부산에서 처음으로 피해가 보고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원산지인 미국이나 북아메리카 지역 자생 소나무 수종은 대부분 내성이 있어 소나무재선충에 의한 큰 피해가 없었으나, 동북아시아 지역의 소나무 수종들은 높은 감수성으로 인해 많은 손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의 피해는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났으며, 2014년 작년 한 해의 경우 전국에서 약 200만 본의 소나무를 제거하는 등 강도 높은 방제를 실시하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선충은 해수를 제외하고 토양 중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 토양 속의 선충은 지하수의 이동, 빗물의 이동, 바람 등의 자연에 의한 전염이 가능하지만, 소나무재선충의 경우 나무속에서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무로의 이동을 위해서는 보다 특별한 이동 수단이 필요하다. 바로 이 부분에서 소나무재선충은 겨우내 죽은 나무속에서 유충기를 보내고 이듬해 성충이 되어 건강한 소나무로 이동하는 하늘소류 (솔수염하늘소 또는 북방수염하늘소) 곤충을 매개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다.


놀라운 번식력,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소나무재선충이 원인이 되어 소나무가 고사되는 병을 소나무재선충병(pine wilt disease)이라고 한다. 소나무재선충병의 병환을 보면 매개곤충이 소나무를 갉아먹는 과정 중에 선충이 나무속으로 이동해 들어가게 되고, 선충에 감염된 나무는 수개월이 지나면 급격하게 시들음 증상을 나타내며 말라죽게 된다. 이렇게 죽은 나무는 매개곤충의 산란처가 되어 한 나무 안에 매개충과 선충이 공존하는 상태가 된다. 이른 봄, 매개곤충의 애벌레가 번데기 상태로 발육을 하게 되고, 번데기가 되었을 때 형성되는 기문(공기 이동 통로)과 새로 형성된 구강, 배설공의 기관을 통하여 소나무재선충이 곤충 몸속으로 이동해 들어가게 된다. 이후 성충으로 발육한 매개곤충은 소나무재선충을 몸 속에 지닌 채로 건강한 나무의 수피를 다시 갉아 먹으며 선충을 감염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이동 수단이 없는 소나무재선충은 매개충을 이용하여 옮겨 다니고 또 한편 소나무재선충이 고사시킨 나무는 매개충의 산란처가 되므로, 이들 둘의 관계는 서로 상부상조의 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빠른 증식력과 다양한 종류의 먹이에 대한 섭식 능력을 둘 수 있다. 먼저 증식력을 보면, 소나무재선충은 1번의 알 단계, 4번의 유충기를 거쳐서 완전한 성충으로 자라는데, 총 소요 기간이 약 3∼5일 정도의 짧은 생활 주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소나무재선충은 나무조직 내의 살아있는 식물세포를 가해하여 흡즙하기도 하지만 죽은 나무 내에서 자라는 곰팡이 균사를 흡즙하며 번식을 지속할 수가 있다. 따라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 및 확산의 그 근간을 살펴보게 되면, 소나무재선충의 뛰어난 증식력, 식물과 곰팡이를 오가는 다양한 섭식 능력, 매개충을 이용한 이동력의 확보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소나무재선충 감염 여부는 나무 외관만으로 구별이 가능할까? 숲에는 여러 가지 생리적인 요인, 기상 요인, 다양한 병해충 피해에 의해 유발되는 고사목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 수목들 모두 외관상으로는 전체나 일부가 잎이 마르거나 고사된 경우들이다. 즉,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나무의 외관과 차별화하기는 거의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 되어 있는 방법은 고사 나무로부터 목편 시료를 채취하여 그 시료로부터 선충을 분리한 다음 현미경 검사나 유전적 분석 검사를 실시했을 때 소나무재선충으로 확인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각 도 별로 소나무재선충 진단 기술을 갖춘 기관이 있으며, 중앙에서는 국립산림과학원이 상위 기관으로서 소나무재선충 전문가가 직접 시료를 검사하여 소나무재선충의 감염 여부를 판별하고 있다.


소나무 지키기에 온 국민이 총력 기울여야


소나무재선충병의 방제 기본 원리는 선충을 옮겨 주는 매개충의 이동과 증식을 막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방제 기술로는 매개충의 유충을 보유하고 있는 고사목의 경우에는 벌채하여 훈증 또는 파쇄가 대표적이며, 매개충의 성충이 활동하는 봄과 여름 시기에는 살충제를 살포하는 방법(지상 살포, 항공 살포)이 있다. 대표적인 예방법으로는 건강한 나무에 약제를 주입하는 나무주사법이 있으며, 나무주사를 실시하였을 경우 한번 약제를 주입하면 2년 동안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리지 않게 된다. 최근에는 고사목을 단 목적으로 처리하는 방법보다 주변의 감염 의심목을 한꺼번에 제거하여 방제 효율을 높이고자 하는 모두베기 방법도 실용화 단계에 있다. 이러한 방제법은 피해지의 피해정도, 환경 및 입지 조건, 경비 등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발하여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계획하여 실행되고 있다.


1999년에는 유럽의 포르투갈에도 소나무재선충병이 보고되었고 2008년에는 국경을 넘어 연접한 스페인에도 피해가 확산이 되었다. 비단 동북아시아만의 고민이 아니라 이제 유럽도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로 인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연구와 방제 기술 부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국가 차원에서 방제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에 있어서 선진국이라고 할 만 하다. 지금은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국민 모두가 관심과 사랑으로 힘을 모을 때이다.


글 | 한혜림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한혜림 박사는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선충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에서 연구원 과정을 거쳐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임업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소나무재선충 진단, 생태 특성 및 피해 기작에 관한 연구 과제를 담당하여 수행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IUFRO(International Union of Forestry Research Organizations) 분과 Pine wilt disease에서 한국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IPPC(International Plant Protection Convention)에서 국제 소나무재선충 전문가로 임명되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