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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안과 밖을 연계하는 과학교육 : 창덕궁 과학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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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감탄하고 질문하면
고궁 안에 담겨있는 과학 원리가 보인다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가진 서울은 ‘내 삶과 상관있는’ 과학교육을 펼치기에 아주 멋진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서울의 고궁은 위대한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훌륭한 과학교육의 장(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학 문화탐방의 핵심은 질문이다. 질문은 어디에서 나올까? 세심한 정신과 정교한 관찰이 필요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감탄하고 감상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노라면 안보이던 부분이 보이게 되고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 생겨난다.


과학문화탐방과 문화유적 답사와의 중요한 차이점은 과학 탐구에 있다. 역사를 이해하고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마음은 동일하게 갖되, 세심한 마음으로 자세히 관찰하고, 관찰한 결과로부터 집요하게 질문하고,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일지 꼼꼼히 따져보면서 돌아보는 것이 과학문화탐방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하지만, 과학 탐구 이전에 탐방 장소 자체에 대한 사회·문화·역사적인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창덕궁의 경우, 조선 시대의 역사를 대표하는 무대이자 임금들이 가장 사랑했던 궁궐이다.


궁궐은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으로서 궁(宮)과 행정적인 업무 공간으로서 궐(闕)로 이루어져있다. 궁궐 속에는 당시 왕실의 생활상과 통치 기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따라서 창덕궁을 탐방할 때 과학적 원리를 찾으려는 마음 이전에 궁과 궐로서 창덕궁이 가진 인간의 흔적, 역사의 자취를 찾아보려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한다. 그럴 준비가 되었다면, 자 이제, 돈화문을 열고 창덕궁 과학탐방을 떠나보자.


돈화문 바라보기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2층 지붕을 가지고 있는 웅장한 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숭례문과 함께 광해군 때 복원된 조선시대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며 현존하는 궁궐 정문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 돈화문의 2층 지붕을 쳐다보면서 기초적이지만 모든 과학 탐구에 중요한 과학 탐구활동인 관찰과 어림을 해보자. 저 웅장한 돈화문 지붕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 지붕의 무게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모두 몇 개이며, 기둥 하나가 받는 힘은 얼마나 될까? 지붕에 비해 현저히 가느다란 기둥 몇 개가 어떻게 저 크고 무거운 지붕을 안정적으로 잘 떠받칠 수 있을까?


지붕의 무게를 어림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붕의 부피와 밀도를 어림해야한다. 복잡하게 생긴 지붕의 모양을 직육면체로 단순화시키면 어림이 쉬워진다. 또 지붕은 나무, 흙, 기와, 빈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들을 평균한 밀도를 어림해야한다. 여러분의 어림값은 얼마인가? 이제 기둥과 지붕이 연결되는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자. 기둥과 지붕 사이에 여러 가지 부재들을 짜맞춰놓은 부분이 있는데 이를 ‘공포(栱包)’라고 한다. 크고 무거운 지붕을 적은 수의 기둥으로 떠받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공포 구조에 있다. 아래 그림을 보고 공포 구조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세상과 궁궐을 구분시키는 돌다리


돈화문을 지나 궁 안으로 들어가려면 금천(禁川) 또는 명당수(明堂水)라고 하는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이 개울은 궁궐의 안과 밖을 구별하는 의미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뜻을 살린 좋은 터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어느 궁궐에서나 이와 같은 개울이 있다.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지만 옛날에는 궁궐 뒤 산에서 맑은 물이 흘러 청계천으로 통했을 것이다. 이 개울을 건너야 임금님 계신 궁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에 놓인 돌다리가 금천교이다.


금천교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다리 상판이 약간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을 알 수 있다. 궁궐로 통하는 상징적인 장소인데 왜 평평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금천교가 제법 폭이 넓은 다리이면서 돌로 만든 구조물이라는 점과 관련 있다. 분명히 돌로 만든 다리 상판은 꽤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이 무게를 지탱하는 교각은 오직 가운데 하나뿐이다. 어떻게 무거운 돌판의 무게를 견디면서 안정하게 다리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치(arch)형 다리 구조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조금 더 생각해보면, 돌로 만든 건축물 대부분이 아치형 혹은 아치를 3차원으로 확장한 돔(dome)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엄과 아름다움을 갖춘 법전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넜고, 진선문을 지나면 임금님을 알현할 수 있는 법전(法殿)인 인정전이 나온다. 임금님이 법도에 맞추어 나라를 다스리는 장소라는 뜻에서 법전이라고 부르는 이곳에서는 나라의 중요한 공식행사나 예식이 진행되었다. 인정전을 들어서면 바닥 위에 길이 두 층으로 되어 있다. 그 중앙에 가장 높은 길은 임금님이 다니던 길인 어도이고, 그 아래 길은 신하가 다니던 길이다. 임금님처럼 가운데 길을 걸어 보자. 인정전에 들어오면 마치 저 안에 임금님이 계신 것과 같은 왠지 엄숙함이 느껴진다. 또 인정문에서 바라볼 때의 느낌과 월대 위로 올라가서 가까이 바라볼 때의 느낌이 또 다르다. 인정전의 지붕은 무척이나 크다. 그러나 이렇게 큰 지붕으로 인해 불안정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엄이 느껴진다. 인정전에서 느끼는 이 위엄과 아름다움의 비밀은 무엇일까? 우리의 눈과 귀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우리나라 전통 건물의 특징은 날렵한 곡선의 처마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처마에서 길이와 각은 무척 중요하다. 적당한 길이와 각에 의해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비나 눈으로부터 벽을 보호하거나 건물 안으로 드는 햇볕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 건물의 처마만이 갖는 아름다움의 비밀은 처마 끝이 하늘을 향하여 경쾌하게 살짝 들려있다는 점이다. 직선 처마가 만들기는 쉬울 텐데 굳이 처마 끝을 곡선지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가까이서볼 때와 멀리서 볼 때 달리 보이는 사람의 착시 현상 때문이다.


만일 지붕 처마가 원래 일직선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멀리서보면 일직선으로 보이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붕 양끝이 안으로 휘어져 보여서 불안정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인정전을 멀리 인정문에서 바라볼 때는 처마 모양이 위로 올라간 곡선으로 보이지만, 어쩐지 가까이서 보면 착시 현상으로 처마가 평평해 보인다. 일본과 중국도 우리와 비슷한 전통 건물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처마끝을 올리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기법이다. 처마가 평평한 중국의 자금성을 가까이서 보면 안으로 엎어질 듯 불안해 보이지만, 인정전은 가까이서 봐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멀리서 봐도 아름답고 가까이서봐도 안정적인 우리 선조의 멋과 지혜가 느껴진다.


빛이 만드는 웅장함, 소리가 만드는 엄숙함


인정전 안에 들어서면 어쩐지 주변이 환하다. 임금님이 계신 곳이라서 그런가? 꼼꼼이 들여다보니 인정전이 놓여 있는 바닥이 월대라고 부르는 허연 화강암 받침대 위에 놓여있다. 뿐만 아니라 회랑으로 둘러 쌓인 인정전의 마당 바닥은 온통 평평하고 하얀 돌판으로 깔려있다. 그로 인해 인정전 마당에 들어서면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해가 화창한 날에는 더욱 눈부시게 환해진다. 모든 궁궐의 배치가 그렇듯이 인정전은 남쪽을 향해있다. 따라서 해가 오래도록 비친다. 인정전 마당 바닥에 깔린 평평한 돌판과 월대 돌판이 이 햇살을 받으면서 빛을 반사한다. 바닥 돌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끄럽지 않고 약간 거칠다.


기술이나 정성이 부족해서 그랬을까? 만약 바닥면에 거울이나 금속 표면과 같이 매끄럽다면 바닥에 닿은 빛이 한 방향으로 반사하여 해를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눈이 부실 것이다. 그러나 바닥 표면이 울퉁불퉁하면 빛은 울퉁불퉁한 각각의 방향으로 반사하므로 모든 방향에서 골고루 빛이 퍼져나가 모든 방향에서도 잘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난반사라고 한다.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물체 표면은 확대해보면 인정전 바닥과 같이 울퉁불퉁하여서 빛을 난반사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모든 방향에서 그 물체를 볼 수 있다.


인정전은 나라의 중요한 행사를 진행하던 장소이다. 문무백관들이 품계석 앞에 줄지어 서있고 임금님이 말씀하시면 신하들이 그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옛날에는 확성기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 넓은 곳에서 행사를 할 수 있었을까? 또, 인정전에 들어서면 왠지 주변이 조용해지면서 실내에 들어온 듯한 엄숙함이 느껴진다. 왜 그럴까? 이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해 인정전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인정전 주위는 지붕 달린 벽이 삼면을 막고 있다. 정확한 명칭은 ‘행각’으로 법전과 외부를 구분하는 벽의 기능과 통로의 기능을 했으며, 지붕을 얹고 통풍구도 뚫어서 필요할 때면 간이 칸막이를 쳐서 다용도 공간으로도 활용하였다. 인정전 마당 삼면을 둘러싼 행각은 일종의 방음벽 역할을 한다. 외부에서 소음이 인정전 안으로 전달되려면 회랑을 넘어야한다. 회랑은 또한 반사벽 역할을 한다. 인정전 안에서 발생한 소리는 주변으로 퍼져나가다가 회랑벽에 부딛혀 반사하여 다시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


탐방을 계속하기 위해


정전인 인정전을 지나면 바로 옆에 푸른 색 지붕을 가진 임금님의 공식 집무실인 선정전과 희정당이 연달아 나온다. 희정당 뒤편으로 들어가면 임금과 왕비가 주무시던 생활 공간인 대조전 일대가 있고 그 동편으로는 왕세자의 생활 공간인 동궁(東宮) 일대가 있다. 대조전 근방에서 왕실 가족들이 살았던 생활 공간으로서의 흔적을 찾아보자. 아궁이와 굴뚝은 어디 있을까? 동궁을 벗어나 낙선재를 지나 언덕을 넘어서면 언덕 입구에서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후원으로 접어들게 된다.


후원 입구에 들어서면 항상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숲 속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 후원에는 정방형 연못 부용지가 있고 그 둘레에 왕립 도서관이었던 규장각과 영화당이 있다. 부용지의 물은 어디에서 흘러와서 어디로 나갈까? 영화당 앞 사람의 손때 묻은 앙부일구에서 어떻게 시간과 날짜를 읽을 수 있을까?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위해 지은 궁궐 속 민간 저택인 연경당에 들어가면 그 당시 선조들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방 한 칸의 크기를 오늘날 방 크기와 비교해보자. 그러고 보니 방의 크기를 말할 때 쓰는 한 칸이라는 단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2시간 넘는 창덕궁 과학탐방을 3쪽으로 요약하자니, 각각의 장소가 가진 풍부한 역사와 아름다움, 그 속에 감추고 있는 과학적 탐구꺼리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결국 후반부에는 제목과 주요 질문만 나열하고 말았다. 과학문화탐방의 핵심은 질문이다. 질문은 어디에서 나올까? 세심한 정신과 정교한 관찰이 필요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감탄하고 감상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노라면 안보이던 부분이 보이게 되고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 생겨난다. 창덕궁을 비롯한, 우리 주변 생활 속의 과학문화탐방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대게 정답이 없고 최선의 가설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창덕궁에 숨겨진 과학 원리를 찾아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감탄할 준비가 된 마음을 가지고 창덕궁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고, 오답을 두려워하지 않고 질문하는 것이다.


글 | 임성민 교수(대구대학교)

임성민 교수는 서울 정릉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자라고 공부하다가 2003년부터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탐구지도 실천 역량을 갖춘 물리교사 양성과 사회문화적 배려 학생을 위한, 특히 장애학생을 위한 과학교육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1998년 제1회 APEC 청소년과학축전을 계기로 창덕궁 과학 탐방을 시작하게 된 이래, 우리나라 온누리가 과학교육의 마당이 될 수 있다는 스승의 주장을 실천하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