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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 : 100년을 기다린 시공간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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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옳았네”…

중력파는 '시공간 물결'


금년 2월, 중력파 직접 검출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전해지자 세계 과학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이번 발견은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예측했으나 검증되지 않은 마지막 과제였다. 그런 배경에서 금번 연구 결과는 '인류 과학사의 쾌거' '천문학의 대변혁'으로 평가됐다. 나아가 연구를 주도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등의 학자들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유력한 후보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중력파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이번 중력파 탐지가 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이번 발표를 둘러싼 궁금증을 알아본다.


13억년의 고독한 우주여행


지금으로부터 약 13억 년 전 이름도 모르는 우주의 어느 공간에 블랙홀 쌍성이 하나 있었다. 두 블랙홀은 아주 오랜 기간 서로를 선회하며 중력파를 방출해 왔다. 이로 인해 에너지를 잃어 점점 더 가까워졌고 결국에는 서로 충돌해 하나의 블랙홀로 병합했다. 마지막 병합과정은 매우 급격히 일어났고 방출되는 중력파도 가장 강했다. 방출된 중력파는 빛의 속도로 우주공간에 퍼져나갔는데 그 중의 일부는 아주 길고 고독한 여정 끝에 약 10만년(0.001억년) 전 드디어 우리은하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지구에는 현생인류가 진화하고 있었고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을 사냥하는데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진화를 거듭했고 아인슈타인이라는 걸출한 후손이 나타나 100년 전 중력파의 존재를 예견한다. 웨버라는 후손은 약 50년 전 이 중력파를 검출하려는 실험을 처음 시작했고, 이러한 노력은 후에 라이고로 대표되는 간섭형 중력파 검출실험으로 발전한다. 7년 전 중력파 연구에 관심 있는 한국의 과학자들도 라이고 과학협력단에 가입하여 중력파 최초검출의 대열에 합류한다. 한편 우리은하에 진입한 중력파는 이 무렵 태양계를 둘러싸고 있는 오르트 구름의 바깥부분까지 도달하게 된다.


지구에서는 약 6년 전 초기라이고 검출기의 가동을 멈추고 성능개선을 진행해 5년 후에는 감도가 3배정도 좋아진 고성능라이고를 완성한다. 2015년 9월 12일에 드디어 1차 관측가동을 시작하는데 이 무렵 중력파는 카이퍼 벨트의 8배 정도 되는 지점을 지나 지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중력파는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2015년 9월 14일 18:50:45초 남반구에서 북반구 쪽으로 비스듬히 지구를 순식간에 지나갔다. 8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 중력파는 고독한 우주여행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중력파가 지구를 지나는 그 짧은 시간동안 지구의 모든 곳에 중력파에 의한 길이 변화가 유발되었고, 이번에 지나간 중력파는 운이 좋게도 고성능라이고가 측정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세기를 가졌다. 아인슈타인의 예측 100여년 만에 드디어 중력파가 지상에서 직접 검출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중력파는 시공간 곡률의 물결


위의 글에서 중력파가 발생한 후부터 지구에서 검출되기까지의 여정을 중력파와 함께 여행하는 입장에서 재구성해 보았다. 이와 같이 저 드넓은 우주에는 중력파를 발생하는 천체계가 많이 있고 인류의 출현 이전부터 지구에 신호를 보내주고 있었으나 최근에야 그것을 관측할 수 있는 기기가 만들어져 인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중력파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라이고의 검출원리는 무엇이며, 중력파 검출의 의미와 향 후 전망은 어떠한지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아무것도 없는 편평한 공간에 별을 하나 갖다 놓으면 그 주위의 공간이 어떻게 될까? 별이라는 물체의 존재와 무관하게 공간은 여전히 편평할 것인가 아니면 물체의 영향을 받아 휘어지게 될 것인가?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론의 성공 이후 뉴턴의 중력이론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답은 놀랍게도 후자이다. 즉, 시공간은 고정불변의 틀이 아니라 분포된 물질과 상호작용하여 휘어지게 된다. 이 휘어진 공간에 작은 물체를 놓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휘어진 공간이 결정하는 측지선을 따라 좀 더 휘어진 곳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중력’이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10여년의 치열한 연구 끝에 물질의 분포와 시공간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1915년 발표한다. 1919년 에딩튼은 태양의 개기일식 때 태양 부근을 지나는 별빛을 관찰하여 빛의 경로가 실제로 휘어짐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그렇다면 별과 같은 중심에 있는 물체가 가만히 있지 않고 시간에 따라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주위의 시공간도 별의 움직임을 반영하여 휘어진 양태가 변할 것이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시공간의 이러한 휘어짐은 별 주위에 머무르지 않고 파동처럼 공간으로 퍼져나가는데 이것을 중력파라고 한다. 즉, 중력파란 ‘시공간 자체의 곡률이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력파의 전달 속도는 빛의 속도와 동일하며 전자기파와 마찬가지로 에너지와 운동량을 전달한다. 전하가 진동하면 전자기파가 발생하듯이 질량이 ‘가속운동’하면 중력파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주먹을 빙빙 돌리면 원칙상 중력파가 발생하지만 그 세기가 극도로 미약하여 일상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중력파가 지나가는 지역은 시공간 자체의 성질이 바뀌기 때문에 그 영역에 있는 물체의 길이 자체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그림에서처럼 지면의 수직방향으로 소위 ‘플러스 편극된 평면 중력파’가 지나가면 등심원 상의 구슬들은 좌우상하가 교번적으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변형을 겪는다.


중력파 검출실험은 1960년대에 시작


이러한 중력파를 직접 검출하려는 실험은 1960년대 초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웨버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길이 2미터 정도의 원통형 알루미늄 막대기에 부착한 압전센서에서 발생하는 전류를 측정하여 막대의 진동을 읽어내고 지나가는 중력파와의 연관성을 찾아내려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우여곡절을 격은 끝에 결국 실패로 판명이 났고, 라이고로 대표되는 새로운 원리의 간섭형 중력파 검출실험이 70년대를 거쳐 등장하게 된다. 라이고는 기본적으로 마이켈슨 간섭계의 원리를 이용한다. 그림에서처럼 광원에서 나오는 레이저 빛을 분리기에서 둘로 나눈다. 하나를 직각으로 꺾어 y-축으로 보낸 후 거울에 반사시켜 오는 빛을 x-축의 거울에 반사된 빛과 분리기에서 다시 만나게 해서 광검출기로 보낸다. 그러면 분리기에서 만나는 두 빛은 x-축과 y-축의 경로차에 따라 간섭이 일어난다. 즉, 광검출기에서 광량의 변화를 측정하면 두 축의 길이 변화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간섭계를 중력파가 통과한다면 두 축의 길이 변화가 발생하고 이를 광량의 변화로부터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실제로는 각종 잡음으로부터 기기의 진동이 발생해 길이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런 모든 잡음을 극도로 줄여서 원하는 정밀도를 유지해야 한다. 라이고는 그 정밀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데 예를 들어 지구직경이 중력파에 의해 길이가 변했을 때 핵자 하나 정도의 길이 변화를 측정해 낼 수 있다(△L/L ~ 10^(-21)). 라이고 프로젝트는 1980년대 기초연구와 90년대 건설을 통해 2002년 1차 과학가동에 성공한다. 2010년 10월까지 총 6차의 과학가동을 수행했지만 중력파 검출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후 5년여 동안 성능개선에 들어가 2015년 9월 12일 1차 관측가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틀 후인 9월 14일 저녁 7시경 드디어 강한 신호가 감지되었다. 그 후 5개월여의 면밀한 데이터 분석과 다양한 검증을 거쳐 2016년 2월 12일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역사적인 중력파 검출을 선언하게 되었다.


검출된 중력파는 블랙홀 쌍성의 병합에서 발생


이번에 검출된 중력파(Gravitational Wave)의 이름은 날자를 따서 GW150914 이라 명명되었고 검출 내용은 물리학 전문저널인 『피직컬 리뷰 레터스』2월호에 게재되었다. 분석결과 이번 두 대의 라이고에서 동시 검출된 중력파는 주파수가 30~150Hz로서 약 0.2초 동안 관측되었으며 그 파형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다. 관측된 파형을 면밀히 분석하여 얻은 정보는 다음과 같다. 중력파 파원은 블랙홀 쌍성계이며 좀 큰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36배 정도이고 다른 하나는 29배 정도였는데, 병합 마지막 단계에서 방출된 중력파 최대 진폭은 10^(-21) 정도이며 하나로 합쳐진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62배정도였다. 태양 질량 3배정도의 에너지가 순식간에 중력파의 형태로 방출된 것이다. 파원까지의 거리는 13억 광년정도이며 방향은 남반구 쪽이다. 이번 검출이 가짜일 확률은 500백만분의 1이하이다. 이외에도 천체물리적인 흥미 있는 내용이 많지만 너무 전문적이라 생략하도록 한다.


중력파 천문학 시대의 개막


그렇다면 이번 중력파 검출의 의의는 무엇인가? 우선 최초의 중력파 직접검출이자 최초의 블랙홀 쌍성 발견이라는 것에 그 의미를 둘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파 존재에 대한 이론적 예견 100년 만에 이를 검증한 것이며,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예견되었던 블랙홀 쌍성을 최초로 관측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검출이 중요한 것은 이제 인류는 중력파를 인지할 수 있으며 지상의 검출기는 우주를 보는 새로운 눈이 되어 중력파를 방출하는 천체현상을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중력파 천문학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1960년대 전파망원경(안테나)으로 우주배경복사를 검출하여 우리 우주가 정적인 것이 아니라 팽창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중력파 천문학은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우주의 모습을 펼쳐 보여줄 수 있다.



이번 검출의 성공으로 과학자들은 중력파 과학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빠르게 다음단계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라이고 협력회의에서는 상시적인 중력파 검출에 대비한 라이고의 새로운 미션과 구성에 대해 논의를 이미 시작했다. 인도정부는 중력파 검출발표 이후 즉각 라이고-인디아의 예산을 승인했고, 중국에서는 천금(天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건설 중인 일본의 카그라 프로젝트,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약 3배 크기를 갖는 간섭계를 우주에 띄우는 유럽의 리사 프로젝트, 그리고 팔 길이가 10km로 늘어나고 지하 100m에 건설하여 현재의 라이고보다 10배정도 감도가 향상되는 아인슈타인 망원경 프로젝트 등이 탄력을 받고 있다. 국내 연구진 또한 소그로(SOGRO, Superconducting Omni-directional Gravitational Radiation Observatory)라는 초전도를 활용한 전방향 중력파 검출기 개발을 제안하고 있다. 중간질량 블랙홀 쌍성이나 백색왜성 쌍성 등이 방출하는 0.1~10Hz 사이의 저 진동수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기존의 간섭형 검출기와 다른 새로운 개념의 독창적인 검출기이다. 연구예산이 지원되어 한국도 잠재력이 높은 중력파 첨단과학의 대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중력파 천문학 시대를 대비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마지막으로 중력파 검출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력파는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전자기파처럼 강하지 않고 극도로 약해서 통신에 사용할 경우 바다 속 잠수함과 교신할 수 있고 지구 중심을 뚫고 반대편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로 그 발생과 검출이 극도로 어렵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중력파를 실생활에 응용하는 것은 지금의 기술로써는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1886년 전자기파를 최초로 검출한 헤르츠조차도 그 당시엔 전자기파의 활용엔 매우 회의적이어서 쓸데없다고 했었다. 헤르츠가 살아있어 스마트폰과 같은 현대의 전자기파 문명을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이 시대의 과학자들은 아마도 다양한 중력파 검출기의 개발과 중력파 천문학을 개척하는 데만도 벅차고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중력파 문명은 열린 과학문제이며 먼 후대에는 분명 누군가가 돌파구를 열 것이다. 필자는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하다. 한국의 총명한 과학도들도 도전적이며 파급력이 큰 중력파 첨단 과학연구의 흐름을 직시하고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본 글이 그러한 흐름을 알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글 | 강궁원 책임연구원(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강궁원 책임연구원은 연세대학교 물리과를 나와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반상대론을 전공했으며 다년간 블랙홀 관련 이론적 연구를 해오다 2005년부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수치상대론 및 중력파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물리학회 천체물리학분과 위원장,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의 언론홍보 대변인, 라이고과학협력단 펠로우 프로그램 국제블록 코디네이터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