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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에너지의 연못, 배터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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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계를 움직이는 뜨거운 심장,
안전하고 오래가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라


배터리란 전기에너지를 화학에너지 형태로 ‘저장’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흔히 배터리라고 부르는 것은 20여 년 전과 지금이 많이 다르다. 1990년대 초반에 난생 처음 보는 배터리가 한 해씩 걸러 두 가지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에만 하더라도 배터리라고 하는 게 건전지, 알카라인 전지, 니카드 전지 등이 있었다. 이 모두를 그냥 ‘건전지’라고 이야기해 버린다. 그런데, 배터리를 건전지라고 해버리면 배터리가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배터리의 세계는 단순히 건전지라 일축해버리기엔 훨씬 더 다양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처음 봤을 때 여러분은 이렇게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배터리를 구매해서 한 번 쓰고 버리는 것과 처음 살 때 좀 비싸지만 한 번 사기만 하면 충전하여 다시 재사용할 수 있는 전지가 있지요. 대개, 라디오라든가 플래시라이트라든가 한번 배터리를 끼워서 한두 달 이상 쓸 수 있는 휴대용 전자제품이라면 한 번 사서 쓰고 버리는 것을 싸게 사서 쓰죠. 이렇게 한 번 사서 쓰고 부담없이 버리는 전지를 ‘일차전지’라고 합니다. 우리가 건전지라 부르는 게 바로 ‘일차전지’ 중 오래전부터 나온 제품을 통상적으로 부르던 것입니다.


사실, 건전지란 이 명칭은 여러분들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에 익숙한 것이죠. 여러분들은 ‘일차전지’, 즉 한 번 쓰고 버리는 전지는 건전지보다 더 익숙하게 쓰던 것이 있을 것입니다. 건전지보다는 조금 더 비싸지만 제법 오래 쓸 수 있는 일차전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알카라인 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알카라인 전지는 일차전지 중에서도 같은 크기일 때 건전지보다도 큰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 때는 우리가 일차전지를 쓸 때 알카라인 전지보다 건전지를 많이 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만 하더라도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던 전자제품이 지금보다 훨씬 드물었거든요. 그때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정도만 갖고 라디오 방송이나 음악을 야외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응답하라 XXXX’ 시절에나 있었던 일이죠.


1재충전 가능한 고성능 이차전지의 등장


그러다가 우리가 실외와 야외로 다니면서 라디오와 음악을 듣는 것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휴대 전자제품들이 나오면서 건전지나 알카라인 전지를 넣어 쓰다 보니 여러 날 쓰는 정도가 아니라 하루도 못 쓰는 일이 점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한번 쓰고 버리는 전지’를 갖고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가령 이틀에 한 번씩 전지를 갈아 끼워야 하는 신형 전자제품이 있다면 1년이면 180~190개 정도의 일차전지를 사다 쓰고 버려야 합니다. 쓰레기 배출량도 엄청나죠. 거기다 이 쓰레기는 배터리 수거함을 따로 둘만큼 별도로 모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가격은 일차전지의 열 배 이상이라도 수백 번 이상 재충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써야 하는 전자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죠. 여기서 이야기하는 수백 번 이상 재충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바로 ‘이차전지’라고 부릅니다. ‘이차전지’는 ‘충전지’라는 친근한 다른 이름도 있지요. 그런 신형 전자제품들은 대개 모바일 IT용 전자기기라 하여 다기능 전자기기들이 대개 여기에 해당합니다.


스마트폰, MP3 플레이어, 휴대용 동영상 재생기들이 이런 류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제품들이 하루 아침에 나왔을까요? 사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제품이 그렇게 흔치 않았답니다. 설사, 이런 휴대용 전자제품이 나왔다 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오래 쓸 수가 없었거든요. 휴대하여 갖고 나와 동영상을 좀 보려 했더니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배터리는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Ni-Cd(니카드)라는 이차전지 정도가 있었고, 자동차용 연축전지를 소형화하여 만든 밀폐형 납산 전지가 휴대용 전자기기에 쓰이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반에 배터리 역사에 기록될만한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차 전지의 핵심 리튬이온과 그 형제들


그것은 앞서 이야기했듯 최신의 고성능 이차전지가 한 해 걸러 두 종류나 시장에 등장한 것입니다. 이때 등장한 고성능 이차전지가 Ni-MH 이차전지와 리튬이온 이차전지입니다. Ni-MH 이차전지는 우리가 흔히들 ‘니켈 수소 충전지’라고 많이 부르죠. 이 두 전지의 등장으로 휴대용 전자기기에 점점 많은 기능을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벨소리도 복합 화음으로 변화하였고, 흑백 화면이 칼라로, 그리고 수많은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단순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죠. 이때 가장 큰 기여를 한 이차전지가 리튬이온 이차전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한 해 걸러 태어난 Ni-MH 이차전지도 성능이 딱히 나쁜 전지는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모차르트와 동시대를 산 살리에르와 같은 전지라고 할 수 있죠.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10년만 늦게 나왔으면 Ni-MH 이차전지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영역에 쓰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에네루프’로 대표되는 가정용 충전지로 자기 영역을 확고히 구축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말 고성능 이차전지가 필요한 영역은 이미 리튬이온 이차전지에게 시장을 다 내준 상황입니다.


리튬이온 이차전지에는 옷만 다르게 입은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라는 것입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옷’과도 같은 케이스에 있습니다. 리튬이온 이차전지는 금속 캔을 갖고 원통형이나 각형 케이스를 만들어 넣지만,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는 파우치라는 포장 케이스에 넣습니다. 과자 봉지나 양갱의 속포장과 비슷한 것이죠. 다만 딱딱하지 않은 포장 안에 넣다 보니 모양을 잘 굳힐 필요가 있어 폴리머 시럽을 갖고 딱딱하게 잘 굳혀서 넣어둡니다. 이게 만일 잘못되면 퉁퉁 부풀어 오르기도 하지요. 이게 여러분들이 쓰는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부풀어 올랐다 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리튬이온 이차전지와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 이 둘은 한 가족입니다. 아, 그런데, 종종 여러분들이 리튬폴리머 배터리라고 부르는 것이 있죠. 자칭, 타칭 전문가들조차도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차세대라 하는데, 이런 전지는 과거에 연구된 적은 있지만 제품에 제대로 채용된 적이 없습니다. 간혹,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를 리튬 폴리머 배터리라고 오기하거나 잘못 부르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전기차 실용화와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미래


리튬이온 이차전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차전지 중에서 같은 크기, 같은 무게의 전지에 가장 많은 ‘전기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이차전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차전지가 생산되고 나서, 십수년이 지난 후 우리는 배터리 전기차라는 새로운 운송 수단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쯤 일차전지만 있던 시절에도 배터리 전기차가 고안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마땅한 이차전지가 없어서 그냥 쓰고 버리는 일차전지로 고안을 해봤었죠. 배터리 전기차에 들어가는 이차전지로 가장 좋은 것이 리튬이온 이차전지입니다. 이 이차전지가 나오면서 배터리 전기차가 드디어 실용화될 수 있겠구나 하는 꿈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차전지 중 ‘전기 에너지’를 가장 크게, 잘 저장할 수 있는 이차전지이다 보니 걱정이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에너지가 큰 것들은 사고 상황에선 제일 위험하거든요. 최근에 모 회사의 스마트폰이 마치 귀신 발화처럼 계속 불이 나다 보니 다들 걱정이 될겁니다. 하지만, 리튬이온 이차전지는 리튬계 이차전지 중에서 가장 안전을 많이 고려하여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오용 상황에 들어가지 않으면 화재나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극히 낮습니다.


여러분이 조심해야 할 오용 상황의 예를 들어 보면, 몸에 딱 달라붙는 옷, 예로 청바지를 입었을 때 뒷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건 배터리에 물리적 충격이 서서히 갈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불에 던져 넣는다든지 하는 것도 위험하고,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아주 덥거나 아주 추운 곳에 장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방치하지 않는 게 좋고요. 무엇보다도 배터리를 ‘다 썼을 때’는 바로 충전기를 찾아서 꽂아 주세요. ‘다 쓴 후 충전기에 꽂는 게 좋다’라는 건 Ni-Cd 이차전지 시절의 괴담인 메모리 효과인데, 리튬이온 이차전지는 괜찮습니다. 그냥 충전할 수 있을 때 습관적으로 충전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전자와 화학이 함께 하는 융합과학의 길


배터리 전기차를 가능하게 한 세계 최고의 이차전지인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구부릴 수 있고 잘라 쓸 수 있다는 기사를 여러분들은 많이 접했을 텐데요. 이건 사실 90% 이상 틀린 이야기라 보면 됩니다. 구부릴 수 있는 배터리는 아주 얇게 만들어진 박막 전지일 때나 가능합니다. 심지어 접게 되면 전지가 파손되어 단락이 일어나 화재의 우려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잘라서 쓸 수 있는 전지도 전지의 밀봉이나 포장이 파손되면서 전지 자체를 파손시키는 행위가 됩니다. 안타깝게도 구부릴 수 있고, 접을 수 있고 잘라 쓸 수 있는 전지란 건 아직 없고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모바일 IT와 배터리 전기차 쪽에선 더더욱 무리한 이야기입니다. 전자 산업에서 가장 느리게 발전하는 기술 중 하나가 배터리입니다. 반도체 쪽이 토끼처럼 뛰어갈 때 배터리 쪽은 달팽이처럼 기어갑니다. 무작정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보는 것보다 어릴 때부터 정확하게 보는 습관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전자 산업 중에서 전기에너지를 안전하게, 그리고 많이 저장하여 휴대할 수 있게 하는 기술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것을요. 그래도 다들 열심히 하고 있지만 쉽진 않습니다. 소명 의식을 갖고 해야 할지도 모를만큼 말입니다. 전자와 화학을 모두 알아야 하는 게 배터리인만큼 사실 오래전부터 융합된 과학을 알아야 할 수 있었던 게 바로 배터리였던 겁니다. 이것으로 배터리의 세계를 가볍게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글 | 박철완 박사(전 한국전자부품 연구원 차세대 전지 연구 센터장)
박철완 박사님은 서울대학교 공업화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산업자원부 지정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센터 초대 센터장, 차세대전지성장동력사업단 총괄간사(부단장급)로 책임 운영, 드렉셀대학교 초빙조교수 등을 거쳐 교육부총리 정책보좌관 자문역을 지낸 바 있다. 저서로는 '그린카 콘서트'가 있으며 '에너지 소나타'를 준비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