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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빈자리, 암흑세계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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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비밀 푸는 마지막 열쇠
이 넓은 세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해 겨울, 천문학자 베라 루빈(Vera Rubin)은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팔로마 천문대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로도 알려진 그의 업적 가운데 가장 주목 받는 것은, 은하 회전 속도 문제(galaxy rotation problem)에 대한 연구로 ‘암흑 물질(dark matter)’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약 백년 전부터 제안되었던 암흑 물질에 대한 연구는, 루빈의 관측 결과 이후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은하 회전 속도와 암흑 물질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1년에 한 바퀴를 도는 것처럼, 태양계도 우리은하의 중심을 축으로 초당 270 km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첨부그림1 참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지만, 한 바퀴를 도는 데는 공룡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만큼의 긴 시간이 걸린다.) 태양계에서는, 태양에 가장 가까운 수성의 공전 속도가 가장 크고 멀리 있는 해왕성의 공전 속도가 가장 작다. 은하 회전 속도 역시 많은 별들이 모여 있는 은하의 중심부에 가까울수록 크고 멀수록 작을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관측 결과는 달랐다. 은하 회전 속도가 예측보다 전반적으로 클 뿐만 아니라, 은하 중심에서 멀어져도 거의 일정하거나 오히려 증가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첨부그림2 참고). 과학자들은 은하에는 별이나 가스, 먼지처럼 보이는 물질들 외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dark matter)’이 상당히 많은 양 존재한다면 이 관측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은하 회전 속도 이외에도 보이는 물질이 없는 곳에서 중력에 의해 빛이 휘어지는 중력 렌즈 현상, 우주 배경 복사의 정밀 측정 결과 등은 암흑 물질의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천문학적 관측 결과로부터 우주는 겨우 5% 정도가 우리에게 보이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70% 정도는 암흑 에너지, 나머지 25%는 이 암흑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 구성 비율 외에 암흑 물질에 대하여 실험적으로 밝혀진 바는 거의 없다. 존재하지만 보이지도 않고, 밝혀진 바도 없다는 점에서 암흑(dark)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그 종류와 질량, 기원 등에 대한 여러 이론적인 설명과 함께, 일반 물질과의 반응을 통하여 이를 측정하고자 하는 실험적인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암흑 물질의 후보 윔프를 찾기 위한 노력


현재 이론적으로 제안된 암흑물질 후보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만 꼽아보면 윔프, 액시온, 비활성 중성미자 등 등이 있다. 이름조차 생소한 입자들인데, 이들은 모두 현재 입자물리의 표준 모형(standard model)에는 존재하지 않는 입자들이다.


윔프(WIMP, 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는 약하게 반응하는 무거운 입자라는 뜻을 가진 암흑 물질의 유력 후보 가운데 하나로, 이론적인 아이디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휘소(Benjamin W. Lee) 박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름 그대로 일반 물질과의 반응은 매우 드물지만, 핵자와 탄성충돌을 할 수 있고, 반응시에 빛을 내는 물질을 이용하면 되튕긴 핵의 운동에너지를 빛 신호를 통해 검출해내는 것이 가능하여, 이를 측정하기 위한 노력이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실험실은 모두 지하 천 미터 가까이 혹은 더 깊은 곳에 있는데, 지표 근처에서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높은 에너지의 입자들로부터 생기는 배경 방사능이 너무 많아 윔프에 의한 반응처럼 드물고 약한 신호를 탐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지하실험들 가운데 이탈리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DAMA/LIBRA 실험은 윔프의 신호를 보았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주목받고 있다. 이 실험 그룹은 지난 20여 년간 약 250 kg의 요오드화나트륨(NaI) 섬광 결정체를 이용하여 윔프에 의한 신호를 탐색해왔다. 은하 중심에 대한 태양계의 회전과 태양을 중심으로 한 지구의 공전 때문에 지구와 암흑 윔프 사이에 1년을 주기로 상대 속도가 바뀌게 된다. 이에 따라 윔프의 검출 반응 또한 같은 주기로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다는 가정과 일치하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것이었다. (첨부그림3 참고) 그러나 이외의 다른 모든 실험에서는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지 않아 궁금증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서의 윔프 탐색


한국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김선기, 김영덕, 김홍주 교수 등이 암흑물질 탐색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여 2003년부터는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의 지하 약 700미터 깊이에 위치한 터널에 실험실을 설치하여 실험을 시작하였다. (첨부그림4 참고) KIMS (Korea Invisible Mass Search)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실험은 WIMP와의 반응단면적이 크고 섬광효율이 높은 고순도의 요오드화세슘(CsI) 결정체로 검출기를 제작하여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실험을 진행하였다. KIMS 실험에서 윔프 신호는 보이지 않자, DAMA/LIBRA의 결과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더 짙어지게 되었다. 이에 2013년부터 기초과학연구단의 지하실험연구단(단장 김영덕)에서는 DAMA/LIBRA와 같은 종류인 NaI 섬광 검출기를 이용하여 직접 비교 검증을 위한 실험을 시작하였다 (첨부그림5 참고). 새로이 코사인(COSINE)으로 이름 붙인 이 실험에는 지하실험연구단을 비롯한 14개의 국내외 대학, 연구소에서 수십 명의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첨부그림6). 이 실험을 통하여 짧게는 DAMA/LIBRA 실험 결과에 대한 확실한 판정을 내리고, 길게는 세계 최고 감도의 검출기를 개발하여 암흑물질의 탐색과 이해를 향하여 보다 전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유민 연구위원님은 핵입자물리학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부, 대학원을 졸업한 후 2014년부터 기초과학연구원 지하실험연구단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에너지를 단거리에서 측정하여 암흑 물질의 후보 가운데 하나인 비활성 중성미자의 존재를 탐색하는 NEOS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