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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의 역습, 케모포비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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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게 힘이다

위해성 평가 맹신 말고 근본대책 수립


케모포비아(chemophobia)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화학물질을 의미하는 케미컬(chemical)과 공포를 의미하는 포비아(phobia)가 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케모포비아란 ‘화학물질에 대한 두려움 또는 회피’를 말한다. 위키백과사전은 근거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케모포비아를 타당한 것과 비이성적인 공포로 구분한다.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케모포비아는 오히려 권장할 만하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근거 없는 불안이나 공포에 시달린다면 이때는 불필요한 케모포비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케모포비아라 해도 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해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의 케모포비아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이 잊을 때쯤 되면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지난여름에는 매일 접하는 계란에서 유독한 살충제가 검출되었고, 일부는 최대허용기준을 초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이들도 많이 먹는 식품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며칠 동안이었지만 계란의 판매가 전국적으로 중지된 것도 사상 최초의 일이다. 연이어 생리대에서 독성이 큰 휘발성유기화합물이 검출되어 사회적인 혼란을 불러왔다. 여성이라면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사용하는 위생용품이기 때문에 불안감이 특히 컸다. 특정 업체에서 만든 생리대의 생산이 일시 중지되었고 회사는 환불조치를 취했다.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뒤따랐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화학물질의 독성과 건강피해에 대해 그만큼 민감해졌고 안전과 생명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증거다. 이런 맥락에서 ‘살충제 계란’과 ‘독성 생리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성숙함의 일단을 드러낸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소비자의 불안과 사회의 혼란은 당장은 부담스럽지만 결국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가정, 학교, 직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화학물질의 안전을 보장하는 체계의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케모포비아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근거 없는 공포나 지나친 불안은 주의가 필요하다. 지금도 진행 중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험을 돌이켜보자. 비슷한 유독 살균제 성분이 검출된 생활용품이 연이어 뉴스로 소개되었고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불안이 확대되자 아예 생활용품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노케미’족이 등장했던 것이다. 소비자가 직접 자구책을 마련하고 나선 것이다. 화학물질 안전에 대해 더 이상 정부와 기업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반증이다. 소비자의 불안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나 노케미가 해답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생활용품을 ‘스스로’ 섞어 만드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나쁜 유해물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예 여겨 예방접종이나 약까지 피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아이에게 약을 주지 않고 키우는 것이 낫다고 믿는 사람들의 카페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화학물질인 약까지 확대된 것이다. 국가의 화학물질 안전관체계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극단적 불안감을 모두 의미 없는 것으로 무시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을 ‘노케미’, ‘안아키’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몬 건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이다. 사회가 초래한 극단적인 불안 때문에 피해를 입는 건 오롯이 소비자이다. 케모포비아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국가와 사회의 화학물질 안전관리체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산현장에서 유해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유통단계에서 이를 감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고의 재발을 막지 못해 비슷한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도 케모포비아의 원인이다. 정부의 안전관리 무능력을 여러 차례 확인한 국민의 선택지는 불신과 불안 그리고 자구책 마련이 되지 않겠는가. 모든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우선 화학물질 안전관리체계를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 번에 하나씩이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전 지식 필요 - 유해성, 위해성, 화학물질 칵테일


화학물질과 이로 인한 건강피해를 이해하려면 먼저 알아두어야 할 지식이 있다. 케모포비아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유해성(hazard)과 위해성(risk) 개념을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유해성은 화학물질의 ‘독성’을 의미하며, 본연의 특성이다.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경로에 따라 유해성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입을 통해 소화관으로 흡수되는지, 호흡기를 통해 들어와 폐에서 흡수되는지, 피부를 통해 들어오는지에 따라 그 화학물질의 독성 즉 유해성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입이나 피부를 통해 신체에 유입되면 유해성이 크지 않지만 호흡기를 통해 노출되면 유해성이 매우 크다. 정리하면 화학물질의 유해성은 노출경로에 따라 결정되는 그 화학물질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한편 위해성은 그 물질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건강피해’의 정도를 의미한다. 위해성은 그 물질이 사람에게 노출되어야만 발생한다. 다이옥신은 유해성이 매우 큰 물질이지만 사람에게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면 위해성은 0이다. 유해성이 낮더라도 많이 노출되었다면 그 화학물질의 위해성은 무시할 수 없다. 위해성은 그 화학물질의 유해성과 노출량의 함수이다.


예를 들어보자. 계란에서 검출되었던 DDT는 호르몬을 교란시키고 암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는데다가 한번 몸에 쌓이면 밖으로 배출이 잘 안되어 유해성이 큰 물질이다. 생리대에서 검출된 벤젠 같은 물질은 아주 낮은 양이라도 호흡을 통해 오랫동안 노출되면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유해성이 큰 물질이다. 이렇게 유해성이 큰 물질들은 조금만 노출되어도 몸에 해롭다. 그래서 더 엄격히 관리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유해성이 큰 물질이라고 하더라도 노출이 일정 수준 이하라면 건강에 미치는 피해는 무시할 수 있다. ‘맹독성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해서 무작정 걱정만 할 게 아니라, 그 물질이 ‘위해한’ 수준으로 높게 검출되었는지를 우선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잊지 않아야 할 점은, 우리가 매우 다양한 화학물질에 의존해 살고 있고 일상 생활을 통해 수십, 수백종, 어쩌면 그 이상의 화학물질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계란에 또다른 살충제는 들어있지 않을까? 생리대에 휘발성유기화합물 이외의 유해물질은 오염되어 있지 않을까? 계란에 살충제가 들어 있다면 닭고기나 오리고기는 어떨까? 혹시 돼지고기나 쇠고기는? 생리대에 오염물질이 들어 있다면 기저귀나 여성청결제에는 유해물질이 없을까? 실제로 여러 제품과 축산물에서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우리가 여러 식품과 제품을 통해 매우 다양한 화학물질에 동시에 노출되고 있다는 우려는 근거가 충분한 것이다.


여러 유해물질에 동시에 노출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화학물질 ‘칵테일’이라 표현한다. 일상생활에서 여러 화학물질의 칵테일에 노출될 때, 우리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화학물질끼리 반응해서 독성이 변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우리는 화학물질 칵테일에 노출되었을 때의 건강피해가 어떨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비슷한 독성기전을 갖는 화학물질들에 동시에 노출된다면, 화학물질의 위해성을 하나씩 모두 더하면 칵테일의 건강피해를 추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정도다. 어떤 화학물질은 다른 물질과 함께 있을 때 그 물질의 독성을 매우 높이기도 한다. 이를 시너지 효과라고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 여러 가지 화학물질에 동시에 노출되기 때문에, 한 가지 화학물질의 위해성만 가지고 건강피해가 없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화학물질 칵테일의 독성과 건강피해는 환경독성학과 규제독성학 분야의 중요한 연구분야이다.


신속함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다


케모포비아에 대처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국가와 사회가 마련해야 한다.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위한 제도적 행정적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화학물질 안전관리체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제품과 매체에 따라 화학물질의 안전관리가 여러 부처로 나뉘어 제각각 관리되면서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고 여기서 화학물질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계란 살균제, 생리대 화학물질 등은 모두 관리책임이 여러 부처로 애매하게 나뉘어 있었던 데서 원인의 하나를 찾을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정부는 뒤늦게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제 안전관리법’을 만들어 생활화학제품 중 함유된 살생물제를 철저하게 관리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약사법, 식품위생법, 화장품법, 농약관리법 등에 의해 관리되는 의약외품, 화장품 등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가습기살균제 사고와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법이, 정작 살생물제가 많이 들어 있고 생활환경에서 자주 쓰이는 화장품이나 의약외품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법이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 의심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법적용 제외 제품은 안전한 것인가? 여러 부처로 나누어 관리하면서 전처럼 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인가? 이런 우려를 갖게 한다.


언론과 대중매체의 선정적인 일회성 정보전달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야 하며 개선을 요구한다. 소비자의 불안과 공포의 상당 부분은 정보의 부재 때문에 일어난다. 잘 모르는 위협을 더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위해소통의 상식이다.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심층적인 분석과 진단을 통한 균형 있는 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전달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보통 ‘맹독성’, ‘살충제’, ‘1급 발암물질’ 등 자극적이고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많다. 최근에도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된 이른바 ‘살충제 계란’, ‘독성 생리대’ 같은 표현은 해당 화학물질의 유해성만을 강조하는 지엽적인 정보만 전달한다. 계란과 생리대에서 검출된 유해물질이 실제 피해를 줄 수 있는 즉 위해성이 높은 수준인지, 혹은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화학물질의 안전성에 대한 판단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으로, ‘확정적 진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정 사안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견이 있고 때로는 정반대의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살충제 계란’에 대해서도 식약처와 일부 전문가 집단은 안전하다고 발표했지만 한국환경보건학회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불필요한 불안이라면 빨리 없애주는 것이 좋지만, 며칠 또는 몇 주만에 부분적인 위해평가 결과를 내놓으며 안전하다고 발표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 신속함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다. 화학물질 위해성과 건강피해에 대한 관리 부처의 위해소통이 개선되어야 할 이유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들


일반 국민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화학물질 안전이 전문적인 영역이고 이에 대한 과학적이고 균형 잡힌 정보도 쉽게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소비자로서, 국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불필요한 생활화학제품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 좋다.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제품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모기퇴치제 대신 모기장이나 방충망을 사용하거나, 선크림을 바르는 대신 모자를 쓰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반드시 사용해야하는 제품이라면 필요한 양만큼만 쓰는 것이다. 치약이나 샴푸를 안 쓰고 살기는 어렵지만, 적절한 양만 사용하는 건 어렵지 않다. 세 번째 방법은 이미 발생한 오염이라면 환기나 청소를 통해 가능한 제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기스프레이를 뿌렸다면 충분히 환기를 시킨 후 방에 들어가는 것이다. 집안 청소와 환기를 열심히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의미가 있다. 조금만 노력해도 노출량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는 유해물질이 많이 있다. 필자가 5일 동안 산사수련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해물질 노출량의 변화를 조사한 결과, 일부 환경호르몬이 최대 90%까지 감소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쉽게 할 수 있으면서 효과가 분명하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이런 노력이 습관이 되었을 때 개인의 건강은 향상될 것이고 사회적 비용도 절감될 것이다.


화학물질 안전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스스로 평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충분한 정보와 지식은 합리적 선택을 도우며 근거 없는 불안을 해결한다. 내가 사용하는 생활화학제품에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있는지, 그 물질이 얼마나 유해한 물질인지 꼼꼼히 살피고 비교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생리대 등 의약외품의 전성분표시제를 조만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소비자는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한편 어떤 제품에서 어떤 유독물질이 발견되었다는 등의 보도에 불안해하지만 말고, 검출된 농도는 얼마이며 그게 위험한 수준인지 따져보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며 그 출발은 학교 교육이 되어야 한다. ‘보건’ 교과에서 질병 예방을 위한 손씻기 교육 등을 하면서, 화학물질 안전에 대한 지식이나 습관을 전달하는 교육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생애 초기부터 좋은 습관을 들이려면 가능한 빨리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부터 화학물질 안전에 대한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화학물질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십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화학물질의 건강피해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와 관리 체계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함은 재론의 필요가 없지만 규제와 관리에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크게 보아 과학의 한계이다. 현재의 과학은 화학물질 안전성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화학물질 안전에 대해서는 지나친 속단을 피해야 한다. 확정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경우에도 ‘예’ 또는 ‘아니오’의 답을 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지난여름 ‘살충제 계란’의 안전성을 속단하여 발표해서 오히려 더 큰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경험이 생생하다. 소비자로서 국민도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 안전망이 좀더 완벽해지도록 사회에 요구하고 차분히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또한 학교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케모포비아는 당장은 당혹스러운 현상이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 안전관리체계를 더욱 탄탄히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최경호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 보건대 학원에서 교수(환경독성학연구실)로 재직하면서,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부소장과 한국환경보건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환경보건학회지의 편집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국제위생환경보건저널 등 국제학술지4종의편집위원으로있다. 화학물질이 사람과 생태계에 미치는 독성과 위해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 십여 년 동안은 특히 호르몬 교란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의 독성과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