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LIFE

우주를 보는 가장 정밀한 눈 :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페이지 정보

본문

세계 첫 ‘블랙홀’ 실제 관측,
어떻게 성공했나


한국천문연구원은 2015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칠레 세 곳 망원경을 연결한 ‘외계 행성 탐색시스템(KMTNET)’을 가동해 외계행성을 찾고 있다. 현재까지 28개를 발견했다. 천문연의 또 다른 천체관측망인 한국우주전파관 측망(KVN)은 올해 가동 10주년을 맞았다. 연세대, 울산대, 탐라대 세 곳의 직경 21m 전파망 원경을 연결해 우리나라 크기(500㎞)의 렌즈를 구현한 전파망원경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전파망원경을 네트워크로 연동해 하나의 거대한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망원경을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Very Long Baseline Interfero metry)라고 부른다. 올해 4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관측에서 성공한 초거대블랙홀 ‘M87’도 미국 칠레 남극 스페인 프랑스 등에 있는 8개의 거대전파 망원경을 연결해 관측한 결과다.


“Seeing the Unseeable!”


지난 4월 EHT(Event Horizon Telescope ;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로 촬영한 블랙홀의 모습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처음으로 검증된 역사적인 실험이 이루어진 지 100주년이 되는 올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블랙홀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관측하는데 성공하였다. 블랙홀 주변의 막대한 중력장으로 인해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나오는 빛이 동그란 반지 모양을 만들고, ‘블랙홀 그림자(black hole shadow)’라고 불리는 중앙 어두운 부분에 바로 블랙홀이 존재한다. 이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진 거대 은하 M87의 중심에 위치하며, 그 크기는 약 400억 km, 태양의 65억 배에 이르는 질량을 갖고있다.


(왼쪽) EHT가 구현한 가상의 전파망원경과 실제 EHT 전파망원경들이 이 가상의 전파망원경에서 M87 블랙홀을 관측한 데이터가 분포하는 부분(실선). (오른쪽) EHT로 관측된 M87 블랙홀(사진·ETHC 국제공동연구팀)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에 의해 예측되는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천체이다. 블랙홀은 막대한 중력으로 주변의 물질을 끌어당기며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검은 구멍’인 동시에, 우주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는 효율적인 ‘엔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여러 (간접적인) 증거들이 블랙홀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은하의 가장 강력한 엔진인 블랙홀의 최근접 지역에서 발생하는 물질 유입과 분출(상대론적 제트 분 출류) 현상을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있다면, 이는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명임과 동시에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궁극적인 검증이 될 것이다.


빛조차 삼키는 블랙홀, 104년 만에 베일 벗다


하지만 블랙홀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관측하기가 어렵다.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인 Sgr A* (궁수자리 A 블랙홀)도 무려 25,000광년 떨어져 있다. 따라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블랙홀 주변에서 나오는 빛을 직접적으로 관측하려면 매우 높은 분해능을 가진 망원경이 필요하다.


이번에 관측한 M87의 블랙홀을 관측하는데 구현된 EHT의 분해능은 약 20마이크로 각초 (1각초는 3,600분의 1도)로 우리나라 한라산 정상에서 백두산 정상에 서있는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을 구분해 낼 수 있을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망원경의 분해능은 관측하는 빛의 파장을 망원경의 구경(망원경의 직경)으로 나눈 값에서 1.22를 곱한 값으로 정의된다(이때, 단위는 라디안). 이 값이 작을수록 멀리 떨어진 두 물체를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파장의 빛을 관측한다면 큰 구경의 망원경이 보다 높은 분해능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하와이 마우나 케냐산 정상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광학 망원경 가운데 하나인 켁(Keck) 망원경은 직경이 10m로 광학 파장영역에 해당되는 5000Å(옹스트롬, 1Å = 0.1nm) 빛을 관측한다면 얻을 수 있는 분해능은 약 0.0125 각초다. 한편 수 미터에서 백 미터에 이르는 직경을 갖는 전파망원경은 큰 직경에도 불구하고 수백 나노미터(nano meter) 파장을 갖는 광학 빛보다 밀리미터에서 수(십) 미터에 이르는 훨씬 긴 파장을 갖는 전파를 관측하기 때문에 전파망원경은 광학망원경보다 분해능이 현저하게 나쁘다. 하지만, 실제 천문학에서 가장 높은 분해능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긴 파장을 갖는 전파망원경을 통해 구현이 되어왔다.


VLBI 기술의지구크기 ‘가상 망원경’ 블랙홀 관


이번 블랙홀을 관측한 EHT는 세계 6개 대륙에 있는 전파망원경 8기를 하나로 연결하여 마치 지구크기만한 가상의 큰 전파망원경을 만들어 높은 분해능을 구현한 것이다. 이것이 초장기선 전파간섭계(이하 VLBI: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라고 불리우는 관측기술이다. 이를 통해 구현한 EHT 전파망원경의 분해능은 앞서 언급한 켁 망원경의 분해능보다 630배, 허블 망원경보다 2,500배 이상 더 높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전파망원경은 중국의 FAST로 망원경의 직경이 500m에 이르지만, 높은 분해능을 구현하기 위해 물리적인 망원경의 크기를 증가시키는 것은 한 계가 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전파간섭계 (radio interferometer) 기술이 영국의 전 파천문학자 마틴 라일에 의해 개발되었고, 1974년 노벨상을 받았다.


전파간섭계 기술은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전파망원경을 이용하여 ‘같은’ 천체를‘ 동시에’ 관측하여 하나의 데이터로 합성시킴으로써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전파망원경 사이의 거리 만큼에 해당하는 구경을 가진 분해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최초의 전파간섭계 망원경인 한국우주전파관측망(이하 KVN : Korean VLBI Network)은 서울, 울산, 제주에 21m직경을 갖는 전파망원경 3기를 이용하여 ‘같은’ 천체를 ‘동시에’ 관측하여 마치 서울 과 제주의 약 500km에 이르는 거리에 해당 하는 직경의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하는 것과 동일한 분해능을 구현한다. 실제 KVN 21m전파망원경 하나가 1.3cm 파장에서 관측할 때 얻는 분해능은 약 120각초이지만, 서울과 제주 전파망원경 2기를 이용한 전파간섭계를 통해 구현되는 분해능은 0.006각초로 20,000배 정도 향상된다.


KVN을 비롯하여 EHT와 같이 전파망원경들 사이의 거리가 수백,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을 경우(이러한 경우를 전파간섭계 가운데 더욱 긴 기선(두 망원경 사이의 거리)을 갖는다고 하여 ‘초장기선 전파간섭 계’라고 부른다), ‘같은’ 천체를 ‘동시에’ 관측하기 위해 각 전파망원경에는 100만년에 약 1초 정도의 오차를 갖는 매우 정밀한 수소원자시계와 GPS 시각을 이용하여 서로 다른 전파망원경들의 시각을 동기화시키고, 정해진 시각에 같은 천체를 관측하도록 관측을 진행한다. 즉 정해진 관측 스케줄에 따라 각 전파망원경에서는 독립적으로 관측을 수행하고, 관측데이터를 하드디스크에 시각정보와 함께 저장한다.


상상 속 블랙홀, 우리 연구진 관측 및 데이터 북석에 큰 힘


다음은 각 전파망원경에서 저장된 데이터를 하나로 합성하여 가상의 큰 전파망원경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러한 일을 ‘상관처리(correlation process)’라고 하며, 이 작업을 수행하는 장비를 ‘상관기 (correlator)’라고 부른다. 각 전파망원경에서는 상관처리를 위하여 관측된 데이터가 있는 하드디스크들을 상관기가 있는 상관센터로 우편으로 배송하거나 인터넷망을 이용해서 전송하게 된다. 상관센터에서는 전파망원경들로부터 관측된 데이터가 도착하면 관측 데이터에 기록되어 있는 시각정보를 비교하고, 이를 동기시켜서 여러 전파망원경에서 관측된 신호를 하나로 합성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러한 합성의 과정은 가상의 큰 망원경에서 독립적으로 관측한 각 전파망원경들의 빛을 하나의 초점에 모으는 과정으로 비유할 수 있다. 실제 관측에서는 천체로부터 오는 빛이 각 전파망원경에 도달하기까지 지구 대기를 통과하면서 빛의 경로가 변하기도 하고, 전파망원경 시스템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하는데, 상관기에서는 이런 오차들을 계산하고 보정하여 각 전파망원경에서 관측된 신호(데이터)가 가상의 큰 전파망원경의 초점에 상을 잘 맺을 수 있도록 한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갖는 전파망원경들. 전파간섭계 기술은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전파망원경을 이용하여 ‘같은’ 천 체를 ‘동시에’ 관측하여 하나의 데이터로 합성시킴으로써 서로 떨어져 있는 전파망원경의 거리 만큼에 해당하는 구경을 가진 분해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관처리의 결과로 가상의 큰 전파망원경의 초점에 상이 잘 맺히게 되면, 과학 자들은 이 데이터를 좀 더 세밀하게 보정하고, 영상화 작업을 통하여 높은 분해능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자료처리 및 영상처리 과정은 실제로 훨씬 더 복잡하다. 실제 관측된 데이터는 가상의 큰 전파망원경을 모두 채우며 관측한 데이터가 아니라, 매우 일부분에서 수집된 데이터이다. 예를 들어 EHT가 구현한 지구 크기의 큰 가상의 망원경에서 실제로 관측데이터 가 존재하는 부분은 전 세계 6개 지역(하와이, 칠레, 애리조나, 멕시코, 스페인, 남극)에 위치 한 전파망원경 8기의 기선(두 망원경 사이의 거리)에 해당되는 부분일 뿐이며, 나머지 부분은 앞의 그림에서와 같이 대부분 비어 있게 된다.


즉, 지구전체를 전파망원경으로 만들어 관측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관측 정보(가상의 큰 전파망원경 전체 면적에서 받은 빛이 아닌 일부의 빛)를 이용하여 가상의 큰 망원경 전체로 관측하였을 때 예측되는 영상을 재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전파간섭계 영상처리 기법은 매우 다양한 알고리즘과 분석방법이 존재하며, 그 신뢰성을 검증하는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번 M87 블랙홀 영상의 경우도, 수 만개의 영상 조건들에 대해 관측 데이터와 가장 잘 일치하는 조건들을 찾고, 높은 신뢰도를 갖는 영상을 검증하는 엄격한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되었다. 참고로 이러한 전파간섭계를 활용한 기술은 천문학 연구뿐만이 아니라, MRI와 같은 의료분야와 같은 곳에 활용되어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태현 박사님은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한국우주전파망원경 (KVN) 그룹장을 맡고 있다. 세계 200여 명 천문학자로 이뤄진 세계 최초로 블랙 홀을 포착하기 위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 EHT)’ 프로젝트 연구진으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