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LIFE

이그노벨상이 전하는 유쾌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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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그리고 생각하라(Laugh and then think)’
엉뚱한 발상이 위대한 발상으로!


글 | 백광진 교사(서울흥인초등학교)


노벨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이다. 그런데 최근 노벨상만큼이나 주목받고 있는 상이 있다. 바로 미국 하버드대의 황당한 연구 연감의 공동 창립자이자 재현할 수 없는 결과에 관한 학술지의 편집장이었던 마크 에이브러햄스가 1991년 노벨상을 패러디한 상이다. 재현해서도 안되고, 재현할 수도 없는 연구에 주는 이 상의 이름은 이그노벨상이다. 이그노벨상은 기발하고 우스꽝스러운 연구를 한 사람이 받는 만큼 상의 이름을 "수치스러운‘, ’불명예스러운"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이그노블(ignoble)이라는 단어에 노벨(Nobel)을 합성하여 만들어졌다. 노벨상이 ‘노벨’의 이름을 따온 것처럼 이그노벨상도 ‘이그나시우스 노벨(Ignacius Nobel)’이라는 가상인물의 명칭을 따랐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하기도 한다.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유쾌한 연구
매년 10개 분야에 시상


이름의 유래를 들어봤을 때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상처럼 보이지만 이그노벨상의 수상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첫째, 사람들을 웃게 한다. 둘째, 그리고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황당해 실소를 터트리지만 이내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연구가 바로 이그노벨상을 받게 된다. 이그노벨상은 수상자를 선정한 뒤 대상 부문을 정하기 때문에 물리학, 화학, 의학 등 매년 필요한 부분을 신설하여 10개 분야에 상을 수여한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상에 걸맞게 시상식 역시 특이하고 유쾌하다. 처음에는 MIT에서 시상식이 열렸지만 학교의 반대로 지금은 매년 9월경 하버드 대학교의 샌더스 극장에서 개최되고, 라디오, 온라인으로도 중계된다. 작년 이그노벨상 시상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다. 시상식에는 실제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하여 논문을 심사하고 상을 수여한다.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은 무려 10조 달러 지폐와 트로피를 받는다. 이그노벨상식 유머로 상금은 화폐가치가 없는 10조 짐바브웨 달러이며 트로피는 직접 조립해야 하는 pdf파일이다.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은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은 딱 1분 동안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1분이 지나면 1999년부터 ‘미스 스위티푸(Ms. Sweetie Poo)’가 무대에 등장한다. 8살 어린아이인 미스 스위티푸는 1분이 지나면 수상자를 향해 지겨우니 그만하라며 계속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수상자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웃으며 내려가는 사람, 더 크게 소리지르는 사람, 2003년에는 뇌물로 돈을 주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이그노벨상 포스터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뒤집어 있다. 이는 고정관념이나 일상적인 사고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획기적이고 기발한 발상의 전환을 뜻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포스터에서는 ‘생각하는 사람’의 입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고양이 액체설, 커피잔을 들고 걸을 때 쏟는 이유 등
엉뚱한 연구들의 총집합


유리 속 고양이가 진짜 액체같다는 생각을 누구나 해 본 적이 있지만 실제 ‘고양이 액체설’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 있을까? 프랑스 리옹대학교의 파르딘 마크 앙투안 역시 다양한 고양이 영상들을 보고 고양이에게 액체의 요소가 있다고 느껴 ‘고양이 유변학’이라는 연구를 했고, 2017년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논문은 어떤 형태의 용기든 자유자재로 몸을 구겨 넣는 고양이들의 신비한 신체 능력을 근거로 삼았는데, 흔히 말하는 ‘고양이 액체설’에 대해 진지하도록 재미있게 해설했다. 유변학은 물질의 움직임과 변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특히 고체, 액체, 기체 등의 상태 중에서 물질이 두 가지 이상의 복합적인 성질을 보이는 현상에 대해 연구한다. 예를 들어 액체이긴 하지만 고체인가 싶은 치약, 토마토 케첩 등도 연구대상이다. 파르딘은 데보라 수를 도입해 고양이 유변학 연구를 진행했다. 데보라 수는 물질이 흐르는(변형이 일어나는) 시간을 관찰 시간으로 나눈 값인데 데보라 수가 1보다 크면 고체, 1보다 작으면 액체이다. 즉, 형태를 유지하며 탄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물체는 고체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채우는 물체는 액체이다.


예를 들어 그림 (a)와 같이 뛰는 고양이는 관측시간이 1초 미만일 때, 고양이의 형태가 변화하는 시간이 1초보다 길어서 고체이다. 그림 (b)와 같이 와인잔에 들어있는 고양이는 수 분 이상 관측해도 빈 와인잔을 가득 채우게 되므로 관측시간이 수 분 이상일 때 이런 고양이는 액체로 볼 수 있다. 그림 (c), (d)와 같이 아기고양이에 비해 나이든 고양이들은 어떤 용기에 몸을 더 빨리 모양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서 물질이 흐르는 시간이 적어져서 아기 고양이에 비해 더 액체의 특성을 갖게 된다. 즉, 결론은 “고양이는 액체일 때도 있고 고체일 때도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흥분한 아기고양이는 고체에 가깝고, 차분한 늙은 고양이는 비교적 액체의 성질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고양이도 보는 관점에 따라 액체가 될 수도 있고 고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그노벨상 수상자가 있다. 총 4명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최근에 상을 받은 연구는 2017년 커피잔을 들고 걸을 때 쏟는 이유에 대한 연구로 한지원 씨가 이그노벨 유체역학상을 받았다. 이 상은 민족사관고등학교 재학 당시 썼던 ‘낮은 진동에서 커피가 쏟아지는 현상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수상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단순히 커피가 쏟아지는 원인뿐만 아니라 커피를 쏟지 않는 방법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한다. 주어지는 시간 동안 하나의 완전한 형태의 진동이 일어난 횟수를 진동주파수라고 한다. 우리가 걷는 동안 컵이 흔들리면 공명현상 때문에 컵 속 커피의 진동주파수가 높아진다. 따라서 이 주파수를 낮추는 방법으로 커피가 밖으로 덜 쏟아지게 할 수 있다. 시상식에서 논문에서 제시된 주파수를 낮추는 방법을 볼 수 있다. 이 방법은 커피 위에 거품을 얹고 컵의 윗부분을 잡은 뒤 뒤로 걷는 것이다. 만약 한 손에 커피잔의 윗부분을 잡고 앞을 보며 뒤로 걸어도 넘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유머 있는 과학의 중요성…
엉뚱한 상상들, 세상 바꾸는 발견의 밑거름


기발한 면도 있지만 하나같이 엉뚱한 연구들인 것 같은데 왜 이런 연구들에도 상을 주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내는 사람들이 위대한 과학적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안드레 가임이라는 과학자가 있다. 2000년 자기장으로 개구리를 공중부양시키는 연구를 한 가임은 개구리가 반자성을 띠는 것을 증명한 이 연구로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 뒤 가임은 다시 한 번 시상식에 오른다. 하지만 시상식의 장소가 하버드가 아닌 스톡홀름이었다. 바로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쉽게 추출하는 방법을 발견한 연구로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얇은 탄소막인 그래핀은 지금껏 인류가 찾은 어떤 소재보다 열과 전류를 잘 전달하는 물질인데 많은 학자들이 한 겹의 탄소 원자를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던 중 가임은 황당하도록 쉬운 방법으로 그래핀을 만들었다. 가임은 셀로판테이프로 그래핀을 만들었는데 연필심으로 종이를 문질러 연필심의 주요 성분인 흑연 입자를 얇게 뿌린 뒤 그 위에 셀로판테이프를 꾹 눌렀다 떼어냈다. 가임이 떼어낸 테이프에는 육각이 연결된 막이 층층히 쌓여있는 흑연 입자에서 딱 한 층만 얇게 붙어 나왔고, 이것이 바로 그래핀이었다.


그동안 다른 학자들은 흑연에서 쉽게 그래핀을 추출할 방법을 몰라 애먹었는데, 가임 교수가 간단히 해결한 것이다. 개구리 자기 부상 실험처럼 엉뚱한 상상을 하던 사람이었기에 연필 한 자루로 그래핀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엉뚱한 상상들이 세상을 바꾸는 발견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그노벨상은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상상을 응원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황당하지만 특별한 상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걸 다시 과학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이그노벨상은 어떤 과학자들에게는 노벨상보다도 더 매력적인 상일지 모른다. 세상을 바꿀만한 이론을 발견하거나 최초의 실험적 증거를 관측하지는 못해도 우리가 과학을 왜 이렇게 즐겁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특별한 해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이그노벨상이 있다?
‘카이스트 크레이지 데이’ 공모전


올해 카이스트에서 이그노벨상과 같이 기존의 관행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이끌어내는 카이스트의 실험정신과 혁신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한국판 이그노벨상을 만들었다.


한국판 이그노벨상은 ‘카이스트 크레이지 데이’ 공모전으로 평소에 적용하기 어려운 파격(Crazy), 창의(Creative), 도전(Challenging), 배려(Caring) 등 실험정신과 혁신 정신을 담은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실행한다.


대상을 수상한 ‘KAIST Contents Network(김한라)’은 카이스트 구성원 개개인이 논문, 연구문화, 인용구, 밈(meme) 등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방사형으로 연결해 생각의 지도를 만들어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최종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평화의 등불 밝히기 미션(이지형)’은 캠퍼스 내 자전거 발전기를 설치해 구성원들이 릴레이 챌린지로 페달을 밟으며 10시간 동안 전광판에 메시지를 송출하는 것이다. 감염병, 전쟁, 환경오염 등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평화 기원 메시지를 대내외적으로 전하고자 한다.


카이스트 크레이지 데이처럼 고정관념과 상식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즐거운 실험을 하는 연구자들이 늘어나, 이그노벨상을 넘어 노벨상 과학분야에서도 최초의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글 | 백광진 교사(서울흥인초등학교)
백광진 선생님은 현재 서울흥인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다. 서울교육대학교교육전문대학원에서 석사과정(초등과학교육)을 마쳤으며 서울 초등기초과학교육연구회에 소속되어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과학전시관의 서울과학교육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