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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 교사 서울안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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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묻고 답을 찾아가는 생활과학자

문제해결 과정이 쌓이면 세상 보는 눈이 깊어진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과학자의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선교사가 되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길을 걸어온 건 아니다. 대구교대를 졸업한 그는 다른 대학 동기들과는 달리 서울로 올라와 임용고시를 쳤다. 서울에 가면더 많이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동경심이 그를 이끌었고, 도전을 좋아하는 뜨거운 피가 그를 떠밀었다. 2003년 서울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운명 처럼 과학과 다시 만났다.


“교사가 된 후에는 과학자와 거리가 멀거라 생각했는데 과학수업을 할 때 아이들도 더 즐거워하고 저도 행복하더라고요. 기쁨이 쌓여가면서 과학교육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겨났어요.”
2006년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것도 성에 안 차 2009년부터 3년간 무급휴직을 하고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활활 타오르던 시기였다. 교수들과 다양한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늘 아이들을 떠올렸다. ‘이 실험은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어 할거야’하면서 마음속으로 박수를 칠 때가 많았다.


활동 중심 과학행사로 바꾸고

교과서에 수업 보완자료 넣어


2012년 꿈에 그리던 교실로, 과학교육 전문가가 되어 돌아왔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서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내 무게중심을 잡았다. 아이들 눈높이에 더 가까이 다가갔고, 다양한 돌발 상황을 예측하면서 수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 학교 내 과학교육의 방향성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2014년부터 2년 동안 과학정보부장을 했어요. 4월 과학의 달 행사를 했는데, 당시엔 과학상상화 그리기나 글짓기 행사를 많이 했어요. 저희 학교도 그랬고요. 그때 과학 부장의 권한으로 그리기나 글짓기 대신 활동 중심 행사로 바꿨어요. 모든 아이들이 다함께 참여할 수 있는 학년별 체험활동을 한 가지씩 했더니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어요.” 학교 내에서의 활동이 ‘최대한 많은 아이들이 참여해 더 즐겁게 활동’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학교 밖에서는 ‘현장교사들의 어려움을 전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조언자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크고 작은 성과들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는 교과서를 현장에 맞게 바꾼 일이다. 그가 2012년 복직 후 국가사업에 참여하고 있을 때, 2009년 개정 교육 과정으로 교과서가 바뀌었다. 당시 4학년 교사였는데, 교과서 개정으로 4학년에 있었던 내용이 3학년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4학년 아이들이 못 배운 부분이 생겨났다. 교육부에서는 별 고민없이 관련 교과서와 실험관찰 내용을 파일로 보냈고, 각 학교에서 프린트해서 사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현장 교사들은 아이들 수대로 일일이 복사하느라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복사본으로 수업하다 보니 컬러사진의 질도 떨어지고 보관하기도 어려웠어요. 마침 제가 창의재단 교과서 검토위원으로 있을 때라 현장의 상황을 설명했고, 책 뒤쪽에 관련 내용을 넣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어요. 덕분에 부록처럼 수업 보완자료가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현장의 불편함에 귀 기울이고 진심 다해 해답을 구했기에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족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이어갔다. 위험하거나 불필요한 준비물이 많은 실험들은 가급적 정리했고, 대신 간편하고 안전한 실험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매순간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며 작고 사소한 불편들을 찾아내는 그의 모습이 유쾌하고 성실한 ‘생활 과학자’를 닮았다.


교사 협력으로 만든 프로젝트 수업
집단지성에서 새로운 희망 발견


올해 초 서울시교육청은 초등 3~6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생참여 중심의 협력적 프로젝트 활동인 ‘우 리가 꿈꾸는 교실(꿈실)’을 시도했다.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아이들이 원하는 주제를 직접 정하고 주제에 맞는 계획을 세워 활동하면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교실 만들기 교육과정이다. 그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음에 맞는 교사들과 머리를 맞댔고, 교육청의 취지를 최대한 살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6학년 담임교사들과 함께 팀을 이뤄 주제 중심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과학, 사회, 미술/음악, 국어 전문교사 네 명이 모였고,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네 과목을 유기적으로 연결 해 ‘온양이 그림자극 만들기’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다. 사회시간에는 6.25전쟁 이후 사람들의 삶에 대해 공부했고, 국어시간에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책으로『온양이』를 정해 아이들과 함께 대본 만들기를 했다. 그런 다음 미술/음악 담당교사가 대본을 토대로 그림자 인형을 만들었고, 마지막으로 과학시간에 인형으로 그림자극 공연을 했다.
“물론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지만, 교사들도 큰 감동을 받았어요. 말로만 듣던 집단지성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몸으로 깨달은 순간이었죠. 사실 그림자극을 하고 싶어도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교사한 사람의 힘으로는 힘들거든요. 그런데 네 명이 부담을 나누다 보니 그만큼 여유가 생기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진행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되는 거예요. 이것을 통해 교사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었고, 교사의 협력이 아이들의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도 했어요.”




8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사회시간에 독립 운동에 대해 배웠고, 과학시간에 독립운동가 100명의 초상화를 그려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카메라 옵스큐라를 직접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빛 조절이나 초점거리 조절이 가능한 렌즈가 없어 제대로 된 초상화를 그리진 못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초등학생은 아직 통합된 사고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과목별 분절적인 수업보다는 다양한 과목을 융합할 수 있는 이런 프로젝트 수업이 효과적이에요.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들도 더 노력하게 되었죠.”
아이들은 교사의 열정과 사랑을 먹고 자라고, 교사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 보며 성장한다. 이러한 선순환이 교육혁신의 첫 단추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과학하는 즐거움 알게 해주고 싶어
아이들 속도 따라가려 더 많이 노력


“과학은 호기심이 생겨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문제해결 과정이 쌓이면 세상을 사는 지식과 방법이 되고, 그로 인해 삶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더 많이 도전하고 성공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의 즐거움이 과학의 매력이죠. 아이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과학 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가르칠 겁니다.”



가능한 많은 아이들에게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 경험을 해주고 싶어 과학 준비물이 2배 4배로 늘어나는 일은 예사다. 4인 1조의 실험이 2인 1조 혹은 1인 1조의 실험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수업 중에 변칙사례를 자주 쓰는 것도 그의 스타일이다.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때 아이들의 눈빛이 더 반짝이니까. 그는 밤낮 없이 고민을 하고 수많은 시도를 해본다. 하지만 유튜브나 인터넷 등 자극적인 매체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기가 쉽지만은 않다.
“아이들이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교사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과 매칭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수업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겠죠.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의 빠른 변화를 교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양질의 연수가 시급합니다. 또 교사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AR, VR 등의 어플도 많이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과학교육 전문가의 꿈을 키우며 쉼 없이 달려온 지 십 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올해의 과학교사상’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없이 기뻤다. 이제 새로운 십 년을 향한 출발선에 섰다. 어제와 오늘의 그가 그러했듯, 내일도 그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