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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살아있는 나의 서울과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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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과학교육은 전국 과학교육의 롤모델



서울의 어느 학교에 가더라도 날이 가고 달이 감에 따라 한두 시간이라도 더 실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 실험이 탐구와 학생활동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글 | 홍달식(전 서울과학고등학교 교장)



내가 처음 교단에 섰던 것은 1969년의 일이다. 중등학교 과학 교사로 과학을 가르친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당시 과학 교육 설비라고는 고작 칠판과 백묵뿐이어서 교과서에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였다. 70년대 학교에는 실험실이 하나 있을까 말까였고 있다 하더라도 얼마 없는 과학교재로 시범 실험하는 교사를 별난 사람 취급했을 정도니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과학교육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84년이라 기억한다. 그해 4월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에 과학기술과가 신설됐기 때문이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를 계기로 서울과학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이루어졌고 1989년에 서울과학교육원이 개원했다. 이 뒤로 본격적인 서울 초·중·고등학교 과학교육 내실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서울과학교육원 장학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한성과학고등학교 교감, 창일중학교 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 단장, 서울과학고등학교 교장 등을 거치는 동안 한 번도 서울교육 현장을 떠나지 않고 서울의 과학교육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태었다.


2003년 5월 초, 과학교육활성화추진기획단이 발족하고 나는 이곳의 단장에 임명됐다. 과학교육활성화추진기획단은 기초과학교육이 특정 교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문제라는 인식이 정부 차원에서 대두되어 창의적인 인재육성을 위한 과학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추진된 2004년도의 서울교육역점사업이었다.


과학교육 전문가들과 함께 28개 추진과제를 엄선했고 과제실천을 이끌었다. 28개 사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은 낙후한 실험실을 현대화해 실험과 탐구 중심의 과학교육을 활성화하고 과학 교원의 국내외연수를 대대적으로 추진해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한 일이다. 서울특별시교육과학연구원으로 통합되었던 과학교육원을 다시 독립시켜 서울특별시과학전시관으로 출범하도록 한 것도 큰 보람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예산지원이 일과성으로 그쳐 과학교육 활성화 사업이 꾸준히 지속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웃 나라 중국은 과학교육을 통하여 국가의 융성을 꾀한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을 신조로 꾸준히 과학교육에 투자를 해오고 있으며, 수많은 인재를 해외에 유학시켜 우수한 과학전문가로 육성함으로써 과학 분야의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일본은 서구에 비해 뒤처져있던 기초과학을 단기간에 격차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앞장서고 기업과 대학이 협력해 과학연구 분야에 획기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나라의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학교육과 기초과학 분야에 집중적이며 꾸준한 행정지원과 예산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2004년 과학교육 활성화 사업이 학교현장의 호응을 받아 그 실효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전례가 없이 큰 규모의 예산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의 과학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항상 전국 각 지방의 과학교육의 롤모델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글 | 홍달식(전 서울과학고등학교 교장)

홍달식 전 교장선생님은 1969년부터 서울특별시교육청 관내 중등학교 과학교사로 출발하여 서울과학교육원 장학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한성과학고등학교 교감, 창일중학교 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 단장을 역임하고, 2009년 서울과학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서울교육 현장의 산증인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꾸준한 교육정책 추진 필요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우리나라에는 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지 여러 매체에서 논한다. 해법 중 하나는 꾸준히 기초과학분야 연구를 지속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단 시간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시대적 요구와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꾸준한 교육정책의 추진과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글 l 한봉희 교장(용강중학교)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 당시 과학교육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교사 한쪽 귀퉁이에 위치한 어둡고 화학약품 냄새가 가득한 실험실에서 낡고 조잡한 실험기구로 한해에 겨우 두세 번 실험 수업을 할 수 있었으며, 다른 교과와 마찬가지로 판서 중심의 암기 일변도의 교육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교 현장에 컴퓨터가 보급되고, 다양한 교육용 기자재와 실험기구들이 개발·보급되면서 일선 학교의 과학수업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이공계 관련 일자리가 대폭 축소되고 기초과학 관련 연구원에 대한 감원과 푸대접 등으로 이공계 기피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과학교육계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열성을 다해 노력한 결과, 교육청에 과학교육전담 업무조직을 구축하고 서울과학교육원을 개원했다. 보다 발전한 과학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나 다시 침체기를 맞이했다. 이후 교육청의 이공계기피 현상 해소를 위한 계획의 하나로 2004년 ‘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과 2008년 ‘과학·영재교육과’를 설치했다. 이것이 서울과학교육 체계화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조직과 예산이 축소되면서 교육내실화 사업이 꾸준히 지속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시교육청 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에 과학교육담당 장학사로 근무했다. ‘창의적인 인재육성을 위한 과학교육활성화 및 내실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낙후된 과학실험실을 밝고 쾌적한 실험실로 현대화해 탐구실험 중심의 과학교육을 실현하는데 주력했던 기억이 남는다. 과학교사 국내대학 6개월 위탁특별연수와 국외대학 1개월 전공교과별 연수를 업무를 담당하면서 현장의 많은 과학교사들과 교감했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큰 보람으로 남아 있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과학교원들은 수도 서울의 과학교육이 우리나라 과학교육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요 근래 몇 년 동안은 선도적 역할을 타시도에 빼앗긴 느낌이다. 미래 지향의 과학교육을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해나갈 독립부서가 없고 관련 예산도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초·중등학교에서는 탐구·실험중심의 기초과학교육이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과학교육 전담부서의 설치와 예산 증액으로 노후하기 시작한 실험실 리모델링과 과학교사의 전문성 신장에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2018년부터는 SW교육이 정규 교육과정에 도입이 된다. 서울과학교육도 이러한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교육계획을 세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글 | 한봉희(용강중학교 교장)

한봉희 교장선생님은 1984년 서울시교육청 소속 경수중학교 부임 이후 2004년 8월말까지 숭인여중, 성일중, 동대문중 학교 등에서 20년간 과학교사로 근무하였다. 2004년 9월 서울시교육청 과학영재교육과 장학사, 한성과학고등학교 교 감, 서울시교육청 과학영재교육담당 장학관을 거쳐 현재는 용강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생활 속에 스민 과학교육 필요


미국 보스턴에서 공부할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곳의 Science Museum이었다. 박사가 될 정도로 과학 공부를 많이 한 어른이었지만 그곳은 하루종일 놀아도 재미있는 아이템이 가득한 곳이었고, 그와 연관된 과학원리가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서울에도 학생 및 일반인의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놀이공원과 같은 과학관’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글 | 이현정(국민대 신소재공학부 부교수)


과학과 관련해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학교 뒤 운동장에 있던 커다란 동물사육실이다. 내 기억 속의 그곳은 아주 커다란 공간이지만 지금 찾아가면 아마 그다지 크지 않은 곳이리라 생각된다. 그곳에는 공작새, 토끼, 닭 등의 여러 동물이 있었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등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같이 그곳으로 가 귀여운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재미난 놀이 중 하나였다.


학교에서 식물을 키웠던 것도 기억난다. 반별로 조그만 공간을 지정받아, 다양한 식물을 키웠다. 꽃이나, 벼도 있었고, 작은 과일이 열리는 식물도 심었다. 거기서 열린 딸기를 따 먹었던 일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거칠 때까지 계속 서울에서 살았으니, 20년간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온 나에게 그 시간은 매일 식물과 동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였다. 그때의 경험은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행복한 환경이었고 자연환경을 연구하는 과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서울에 있는 국민대학교 신소재 공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의 모습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보스턴에서 공부할 때 봤던 Science Museum과 초등학교때의 기억은 과학이 발전과 미래의 과학자를 키워내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에 대한 힌트를 내게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만난 과학교육 현장은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내가 초·중·고를 다닐 때와 비교하면 지금 학생들의 과학 교육환경은 많이 발전했다. 요즘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좋은 기자재를 가지고 수준급의 실험실에서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나 WISET과 같은 기관에서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과제나 시설을 활용하여 다양한 경험을 쌓고 오는 학생도 많아졌다. 이 정도로 발전한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이 자랑스럽다. 다만, 그것들이 입시를 위한 것이 많아, 과정보다는 결과에 치중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과학교육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생활 속에 스민 과학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각 초·중·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작은 동·식물원 같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생활 속의 자연환경이 필요하다. 훌륭하고 커다란 시립과학관이나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해 과학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상적으로 자연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산학연 현장에 있는 과학자 선배들이 초·중·고에 가서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해줄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 현장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해준다면 새롭게 과학에 도전하는 아이들이 나올 것이다.



글 | 이현정(국민대 신소재공학부 부교수)

이현정 교수님은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 주립대 재료공학과 박 사후 연구원과 MIT 재료공학과 박사후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재료연구본부 선·책임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 민대학교 신소재공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유기재료, 무기재료, 복합재료를 이용한 신소재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기억 속에 살아있는 나의 서울과학교육

과학과 관련된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 필요


가족들과 우연히 참여했던 ‘융합과학체험마당’ 부스에서 과학의 원리를 열심히 설명해주던 학생이 떠오른다. 학생들이 자신이 공부하고 탐구한 내용을 직접 설명하고 공유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에게 “너도 나중에 형처럼 공부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잘 설명해 줄 수 있겠지?”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글 | 홍옥수(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원)


과학과 관련된 기억이라면 초등학생 시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방학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와 버스를 타고 혜화동에 위치한 국립서울과학관에 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를 원했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과학교사로 근무하셔서 나에게 과학관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알려주셨고 나는 서울과학관에서 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워 결국 과학을 전공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구경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있다. 국립서울과학관에서 방학마다 진행한 특별강연이다. 그 강연에서는 과학자들이 학생들에게 최신 과학을 소개해줬다. 그때 들은 강연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강연이 ‘제3의 물결, 정보화 사회’에 대한 것이었다. 강사의 말을 들으며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상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지능정보사회에 대비한 인재양성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지금, 25년 전 제3의 물결 강의를 듣고 놀라워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의 과학에 대한 배움은 모두 서울에서 이루어졌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초·중·고등학교 12년을 서울의 학교에 다녔고 그 뒤 서울대학교 과학교육과(물리전공)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쳤으니 온전히 서울의 과학교육 안에서 자라고 배웠다고 할 수 있다.


학교의 과학교육만을 배우다 보니 학교 밖 과학교육을 위해 일하고 싶어 서울에 위치한 ㈜동아사이언스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으며, 지금은 서울 소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과학교육과 관련된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담당하게 됐다.


옛날에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과학관을 방문했던 것처럼 나도 가족들과 함께 과학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을 방문한다.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나의 아이도 과학에 관해 관심을 가질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서울의 학생들은 많이 배우고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나 배운 것을 직접 응용해볼 기회가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 과학교육을 받은 학생들 누구나 자기가 배운 내용을 활용하여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거나 과학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서울과학교육이 학생들에게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은 나에게 과학과 관련된 특별한 경험의 기회를 많이 제공해 줬다. 과학교육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자, 서울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부모로서, 서울의 과학교육이 모든 학생에게 과학에 대한 행복한 경험을 계속해서 제공해주길 기대한다.


글 | 홍옥수(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원)

홍옥수 연구원 님은 서울에서 초중고 12년 동안 과학교육을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과학교육과(물리전공)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를 받았다. 학교밖 과학교육을 위해 ㈜동아사이언스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서울 소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과학교육과 관련된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야외 체험활동은 과학적 직관을 얻는 과정


환경 교육의 변화는 학생들의 가치관과 삶의 목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기존의 환경 교육은 절약과 주변 환경 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지금의 환경 교육은 지구 시스템적 관점과 경제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다루고 있고 과학의 목적과 가치를 정의해 주고 있어서다.


글 | 이성도(서울과학고등학교 지구과학과 교사)


1987년 처음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다. 당시는 사설 기관 위탁 교육으로 개인 컴퓨터를 직접 구매해야 배울 수 있었다. 그 뒤로 학교 일선에 컴퓨터 보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전산교육은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학생 때는 컴퓨터를 이용한 프레젠테이션이 급속하게 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컴퓨터가 교육현장에 전파된 30년, 이제 컴퓨터는 과학교육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도구가 됐다.


2013년부터 시행된 스마트 교육은 과학 활동 영역이 넓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일방적인 교사의 강의가 아닌 학생들의 생각과 산출물을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되는 등 양방향 소통이 더욱 수월해졌다.


스마트 교육으로 인한 더 큰 수확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가진 데이터 처리 능력과 가공된 정보로 학생들의 학습 방식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 주었고 특히, 교실 밖에서 활동하고 배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이로 인해 컴퓨터는 전산과목 영역을 벗어나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었고 한정된 교실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자연을 느끼는 외부에서도 교육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게 됐다.


지구과학은 지구를 탐구하는 학문답게 외부활동이 필요한 과목이다. 교외 천체관측회와 자연탐사에서 아이들이 자연에 대해 갖는 흥미와 경외는 항상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아이들은 자연을 통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치를 느끼는 것 같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야외 체험활동은 생각의 폭을 넓히고, 과학적 직관을 얻는 소중한 과정이다.


교실 내에서 학습하고 경험하는 것을 넘어 가공되지 않은 자연을 경험하고 스스로 관찰해야 전인적인 미래 교육이 가능하다. 체험학습에 대한 열의는 넘쳐나고 여러 지원 프로그램으로 인해 금전적 부담은 많이 해소되었지만 일련의 안전 문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부담은 매우 크다. 현장의 교사가 느끼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만으로 체험활동을 좀 더 활성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육청과 여러 연구단체가 준비한 알차고 다양한 체험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보다 많은 학교에서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즐거움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개인적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원팀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선생님들은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교사가 행사의 주제를 잡고 학생들을 모집하면 지원팀이 활동 계획, 참가비 수납, 행사 진행, 교통편 준비, 안전관리, 물품준비 등을 패키지로 수행하는 것이다.


실패를 즐기고 새로운 시도에 주저하지 않는 과학교육 학풍을 만들기 위해 학생과 교사, 학교에 많은 지원이 뒷받침돼, 서울과학교육이 도전정신을 되살리는 중추적 역할을 맡아주길 기대한다.


글 | 이성도(서울과학고등학교 지구과학과 교사)

이성도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공항고등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서울과학고에서 지구과학과 천문관측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으며, 첨단기자재활용연수 천문대장 비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과 한걸음 더 가까워졌던 시간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과 자동차 기술 같은 다양한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성과의 밑바탕에는 과학교육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과학교육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풍요롭게 해준 셈이다.


글 | 정준호(배우)


원래 고향은 충남 예산이지만,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서울에서 열심히 생활했던 시기가 있었다. 목표했던 대학이 있었기에, 어떤 과목이든 집중해서 공부해야 했다.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과학교육’에 집중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해본다. 특히, 중학교 시절 화학 선생님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과학이 어렵고 따분한 과목이 아니라는 것을 당시 경험을 통해 알았다. 다양한 화학실험을 수업시간에 하면서, 신기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신기함이 과학이라는 체계적인 학문의 기반 위에 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덕분에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과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요즘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그 시절 생각이 종종 떠오른다. 과학자로 진로를 정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접한 과학 공부의 경험은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어 선생님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제 학교에서 어떻게 과학교육을 하고 있는지, 곁에서 직접 경험할 일은 없다. 하지만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교육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교육은 학부모와 교사, 사회가 함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아이들과 과학 관련 도서관 같은 곳에 가서 놀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통해 배우는 것도 많지만,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얻는 체험이 더욱 오래 남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했기에.


많은 인구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에, 서울의 과학교육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다른 지역의 과학교육도 영향을 받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자라나 접할 과학교육이 더욱 가치 있는 지식과 지혜로 가득하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이 과학을 어렵지 않게 느낀다면, 일상 속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 상상이라고 여겼던 기술이 현재에 이르러 속속 현실이 되고 있다. 그 시작점에 과학 교육이 있다.


학문이 아닌 삶으로서의 과학이 우리 곁에 함께하기를 기대한다. 실질적으로 과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많은 과학박물관과 과학도서관, 전시관, 체험과학학습관 등이 생기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서울과학교육>의 지면에도 유용한 정보를 많이 실어 각급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안내를 제공해주었으면 좋겠다.


글 | 정준호(배우)
정준호 님은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나와 같은 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다. MBC 24기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대표작으로 <드라마> 왕초, 아이리스, 마마, 내인생 마지막 스캔들 등이 있고, <영화>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공공의적2, 인천상륙작전 등이 있다. 현재 벤제프골프와 해비엔젤라 대표이사직을 겸하고 있으며, 통일부와 국정원을 비롯하여 정부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