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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초전도체의 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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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가슴 설레게 한 해프닝

고체물리학의 꽃, ‘초전도체’란 무엇일까?


얼마 전부터 초전도체 춤이 유행이다. 신나는 팝송에 맞추어 빠르게 스텝을 밟는 이 춤을 보고 있으면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의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부양하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 마이클 잭슨의 문 워킹이 땅 위를 미끄러지며 천천히 걷는 것 같았다면, 이 춤은 한 층 업그레이드되어 공중을 딛고 걷는 허공 답보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 외국에서 시작된 유행이지만 우리나라의 한 학생이 SNS에 올린 초전도체 춤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 조회 수 2억 뷰를 넘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춤을 초전도체 춤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소수일 것이다. 지난 7월 국내의 연구진이 상온과 대기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소식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면서 우리나라에 초전도체 열풍이 불었다. 연구진은 이 물질이 물이 끓는 온도인 섭씨 100도에서도 초전도 성질을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이 제시한 증거 중 하나는 시료를 자석에 올려놓으면 절반 정도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보통 동영상을 과학적 증거로 제시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공중에 뜬 초전도체의 모습은 워낙 상징적이었고 대중에게는 공중부양하는 모습이 초전도체의 대표적인 성질로 알려졌다.


연이은 상온초전도체 발견 해프닝, 진짜 초전도체를 알아보는 눈 기르기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상온 초전도체는 오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학계에서는 초전도체가 아닌 다른 평범한 현상을 초전도 현상으로 오인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결과를 최초로 발표했던 연구진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에는 검증을 위한 실험이 전 세계에서 이루어졌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이 물질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초전도체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분야에서 상온 초전도체를 주장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며 대부분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다. 초전도 연구가 한참 유행이었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는 상온 초전도체로 오인된 물질을 부르는 ‘미확인 초전도 물체’라는 이름이 따로 있었을 정도이다.


그래도 긍정적인 점은 있다. 초전도 현상이라는 흥미로운 물리 현상을 대중에게 알리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리학에는 단단한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는 고체 물리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초전도체는 고체 물리학의 꽃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으로, 네덜란드의 카메를링 오너스라는 실험 물리학자에 의해서 1911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아직 양자역학이 제대로 정립되지도 않았던 때에 발견된 이 현상은 물리학계 최대의 난제 중 하나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닐스 보어 등 수많은 물리학계의 거장들이 도전했는데도 초전도 현상의 원리를 설명하지 못했다. 5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초전도체는 존 바딘, 리언 쿠퍼, 로버트 슈리퍼 세 사람이 만든 이론으로 설명이 되었다.


처음으로 문제가 풀린 후에도 초전도 현상은 단순한 역사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그 이후에 영하의 온도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이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이 여럿 발견되었고, 이 물질들에 고온 초전도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고온 초전도체의 원리는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난제로 남아 있으며, 많은 물리학자가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 중이다. 물론 초전도체가 작동하는 온도를 상온 가까이 올리려는 시도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언제 또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보고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번과 같은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기르는 한 방법은 진짜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다. 과학은 관찰된 사실을 객관적인 기준을 통해서 정확하게 해석하는 학문이니, 객관적인 기준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부터 물리학에서 어떤 성질을 가진 물질을 초전도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 성질들을 잘 기억하고 있으면 독자들도 다음에 누군가 상온 초전도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초전도체의 특성 첫 번째, 저항 없이 흐르는 전류


초전도체는 크게 세 가지 특성을 가진다. 첫 번째로 소개할 초전도체의 특성은 물질의 전기적 특성이다. 초능력자, 초고속 열차, 초저예산 영화 등 ‘초(超)’라는 한자는 기존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것들을 초월하는 경우에 쓰인다. 초전도체는 그런 의미에서 전도체를 초월하는 물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전도체는 구리나 금과 같이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을 뜻한다. 반대로 고무나 플라스틱처럼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물질은 부도체라고 하며, 실리콘으로 대표되는 반도체는 불순물의 양을 조절하면 전기적 특성을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이다. 그리고 초전도체는 전기를 놀랍게도 잘 흘리는 물질이다.


하지만, 이렇게 애매한 정의는 물리학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정량적으로 얼마나 전기가 잘 통해야 초월적으로 잘 흘리는 것이란 말인가? 전기가 흐르는 정도를 정량화하는 척도로는 전기 저항을 사용한다. 옴의 법칙을 살펴보면 [전압 = 전류×저항]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저항이 작을수록 같은 전압일 때에 전류가 많이 흐르는 셈이니 저항이 작은 물체는 전기를 잘 흘린다고 할 수 있다. 저항은 전자의 움직임을 막으며, 전자의 에너지가 열로 발산되게 만드는 원인이다. 아무리 전기를 잘 흘리는 전도체도 저항이 0일 수는 없다. 때문에, 우리가 어렵게 만든 전기를 전선을 통해서 옮기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손실이 일어나며, 이를 금액으로 치면 한 해에 1조 5천억 원이 넘는다. 초전도체는 전기 저항이 0이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는 저항이 있는 금속 상태였다가 전이 온도라고 불리는 특정 온도 아래에서 저항이 0인 상태로 바뀐다. 왼쪽의 그래프가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체를 온도를 낮추어 가면서 저항을 측정했을 때에 볼 수 있는 그래프이다. 일반적인 금속은 온도를 낮추면 연속적으로 저항이 감소하지만, 초전도체가 되는 금속은 특정 온도 아래에서 갑자기 저항이 0으로 떨어지며 초전도체로 변신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저항이 낮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0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이기 위해서 저항 그래프의 세로축은 로그 함수로 바꾸어서 그려서 측정 장비의 한계까지 저항이 작아지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초전도체의 특성 두 번째, 마이스너 효과


초전도체의 두 번째 성질은 마이스너 효과이다. 초전도체가 자석 위에 떠 오르는 것을 마이스너 효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기 부양과 마이스너 효과가 관련은 있지만, 마이스너 효과만으로는 자기 부양 현상을 일으킬 수 없다. 보통 자석에 붙는 물질은 자석에 의해서 생긴 자기장과 같은 방향의 자기장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이는 마치 같은 방향으로 정렬된 자석 두 개와 같은 상황이 되어 서로 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반면, 초전도체의 경우는 밖에서 생긴 자기장과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만들어서 내부의 자기장을 상쇄하려 하며, 이를 마이스너 효과라고 부른다. 이 경우에는 자석을 가져다 대면 마치 반대 방향으로 정렬된 자석처럼 행동하여 같은 극끼리 마주 보는 상황이 되며 밀어내는 힘이 작용한다. 이렇게 마이스너 효과로 인해서 생기는 척력을 이용하면 자기 부양이 가능할 것 같지만, 자석 놀이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한 자석 위에 다른 자석을 띄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단순히 밀어내는 힘 만으로는 한 물질을 다른 물질 위에 띄울 수 없다. 실제로 자석 위에 초전도체를 올려놓으면 초전도체는 자석 바깥으로 밀려나 떨어진다. 따라서 마이스너 효과가 자기 부양이라는 말은 틀렸다. 자기 부양을 위해서는 사실 다른 원리가 필요하다. 초전도체가 마이스너 효과를 이용해서 상쇄할 수 있는 자기장의 세기에는 한계가 있다. 1형 초전도체라고 부르는 물질은 이 한계가 되면 초전도 성질을 잃어버리고 금속으로 변해버린다.


보통 자기 부상 실험에서 사용되는 초전도체는 1형이 아니라 2형 초전도체이다. 이 물질에서는 마이스너 효과를 넘어서 자기 선속 고정 현상이 일어난다. 자기 선속 고정 현상은 상쇄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의 자기장이 초전도체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 자기장의 세기가 변하지 않게 하려는 현상이다. 그래서 초전도체를 자석 위에 꾹 눌러 놓으면, 제자리에 그대로 있으려는 힘이 작용한다.


이 자기 선속 고정의 놀라운 결과 중 하나는 초전도체가 자석 위에 뜨는 것뿐 아니라, 자석에 매달려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며 자기 부양 현상은 오히려 이 자기 선속 고정 현상과 더 관련이 깊다. 많은 영상에서 자기 부상을 시키려면, 초전도체를 자석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꾹 누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자기 선속 고정을 보일 만큼 큰 자기장의 세기를 얻기 위해 초전도체를 자석에 가까이 붙이기 위함이다.


초전도체의 특성 세 번째, 거시적 양자 현상


초전도체의 마지막 성질은 거시적 양자 현상이다. 양자 역학은 보통 미시 세계에서 많이 사용된다. 거시적 양자 현상이라니 굉장히 모순되는 말처럼 들린다. 양자 역학에서는 미시 세계의 입자를 마치 파동처럼 다루며, 이로 인해서 양자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초전도체에서는 전자들을 마치 바다를 이루는 물의 입자들처럼 거대한 파동으로 기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몇몇 거시적 양자 현상이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자기 선속 양자화’와 ‘조셉슨 효과’가 있다. 특히 조셉슨 효과는 두 초전도체 사이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를 놓아도 초전류가 흐르는 현상으로 양자 터널링 현상과 관련이 있다. 거시적 양자 현상은 난해하게 들릴 수 있지만, 현재 초전도체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는 양자 컴퓨터의 핵심 원리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초전도체의 세 가지 성질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어느 것 하나 상상을 벗어나지 않는 성질이 없다. 초전도체는 놀라운 현상인 만큼 여러 물리학의 대가들이 연구했고 지금도 세계의 많은 물리학자가 연구하며 발전하고 있는 분야이다. 초전도체가 꼭 상온에서 작동하지 않더라도 현재 인류가 골몰하고 있는 에너지 문제, 양자 컴퓨터 등 중요한 분야에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니 인류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초전도체를 관심 갖고 바라보길 바란다.


김기덕 연구원은 물질의 특성을 연구하는 응집물질물리 분야의 실험물리학자이다.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전하 밀도파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후 나노구조물리연구단,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다시 독일로 돌아가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