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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경 교수 서울대 생명과학부 정종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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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학
새로운 미래 여는 위대한 도전


정종경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는 지난 2013년 ‘제6회 아산의학상’ 기초의학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제정한 아산의학상은 인류의 건강증진을 위해 기초의학 및 임상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국내 의과학자를 선정하여 시상하는 상이다. 오랜 시간 세포 신호전달체계에 대해 연구해온 정 교수는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원인유전자의 작용기전을 규명하고 인간의 성장과 대사조절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신호전달 유전자 기능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파킨슨병의 주 발병 원인을 규명한 그의 논문은 지난 2006년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지에 게재됐으며 이후 파킨슨병 관련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 편집부


무하마드 알리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공통점은? 바로 파킨슨병을 앓았다는 것이다. 파킨슨병은 퇴행성 뇌질환의 일종으로 환경적으로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병된다고 알려져 있어 연구하기 어려운 분야로 손꼽혔다. 대표적 난치병인 이 병의 유전적 원인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과학자가 있으니, 바로 정종경 교수다. 정 교수는 초파리를 인간 질병 유전 연구의 모델동물로 활용하여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병하는 파킨슨병의 발병 기작을 분자수준에서 연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명예나 부를 위해서가 아닌 과학자로서 사회와 인류에 기여해야한다는 사명감의 발로였다.


문학 소년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생명과학자로


정종경 교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분자생물학자다. 의생명과학분야에서 활발한 연구업적을 남긴 정 교수는 파킨슨병 원인 유전자와 당뇨병 유전자의 기능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네이처지에 2006년, 2007년 연이어 논문을 게재하며 유전자와 관련된 질병 이해와 치료기술 개발에 큰 기여를 했다. 2002년 우수 한국인 의과학자 20인상(대한의사협회), 2006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한국과학재단), 2008년 한국과학기술원 학술대상, 그리고 2013년 제6회 아산의학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어린 시절 책읽기를 좋아한 문학 소년이었던 그가 과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때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서울대 약학과를 다니던 정 교수는 기초과학 중에서도 특히 유기화학에 재미를 느끼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만 1988년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의 연구 환경은 상당히 열악한 형편이었다.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망설임 끝에 미국 유학길을 선택했다. 그의 마음을 다잡아준 것은 오직 과학을 공부하고픈 열정이었다.


“어쩌면 공부가 너무 어렵거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재미가 없어 모든 걸 망치는 게 아닌가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래도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니 일단 한번 도전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꼬박 4년을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구에 매진한 결과 그는 하버드대에서 분자세포생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데 성공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놀고 가끔은 엉뚱하라


연구생활 25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정 교수는 아직도 생명과학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생명과학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질문에 답을 주는 분야입니다. 다른 과학 분야와 달리 아직도 개척해야할 영역이 굉장히 많아요. 처음으로 실험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연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죠. 예상한대로 결과가 나오면 기분 좋은 일이고 기대를 뛰어넘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면 더 큰 희열을 느낍니다.”


정 교수는 그와 같은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3가지 요건을 주문했다. 주어진 결과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는 통찰력,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창의성, 그리고 풍부한 지식이다. 그는 “이 모든 걸 갖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과 희생이 뒤따른다”며 “무엇보다 과학에 대해 스스로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기교육은 오히려 과학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많은 학생들이 장래희망으로 과학자를 말하지만 연구하고 싶은 대상은 로봇이나 로켓 등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평소 접하는 책이나 TV를 통해 본 가장 흥미로운 대상이 그것들이기 때문이죠. 학생들을 학원 시스템에 가두어두면 아이들은 자기 주도의 과학이 아닌 매뉴얼에 짜인 전형적인 과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흥미를 잃게 될 확률이 높아지죠.”
대신 그는 해결책으로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가상의 실험을 하며 토론하고 제시한 주제들을 조합해서 글을 써볼 것을 제안했다.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도입하고 전개하고 모델을 제시하여 완성할 수 있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뜻에서다.


“과학처럼 예측 불가능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인문학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놀고 가끔은 엉뚱한 생각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주어졌을 때 통찰력 있고 창의력 있는 과학자가 될 수 있어요.”


사회와 인류에 기여하는 과학이 진정한 연구


정 교수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돈을 벌지 않는 대신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일합니다. 상당한 연구비를 어쩌면 노숙자나 고아들을 도와주는 데 사용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타당할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과학자를 지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과학자들이 사회에 돌려줄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때문이죠. 과학자에 대한 지원은 다른 이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만큼 분명 사회에 환원하는 과학을 해야 합니다.”


지난 10년간 세포와 개체에 관해 연구하며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온 정 교수는 “앞으로 비만과 당뇨병 같은 질병을 타깃으로 하되 동시에 근본적인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도에 기여하고 싶다”며 “어떤 현상을 처음 발견한 과학자로 교과서에 한줄 실리게 되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전했다.


과학자의 길에 들어선 이후 줄곧 남들이 하지 않은 연구, 처음으로 도전하는 연구, 창의적인 연구를 해온 정 교수. 면역억제제인 라파마이신의 기전을 처음으로 규명하고 파킨슨병 원인 유전자와 당뇨병 유전자의 기능을 세계 최초로 밝히고 AMPK 단백질의 항암기능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등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연구는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세계 최초 발견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그가 앞으로도 새로운 미래를 이끌 연구로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다면 한국에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과학자로서의 꿈,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인터뷰가 있던 날, 이공계 과학자의 꿈을 키우는 고등학생 14명(강서고 2학년 이과반 9명, 숭문고 2학년 이과반 5명)이 정종경 교수의 분자유전체학연구실을 방문했다. 이번 연구실 탐방은 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안겨주고 진로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학생들은 교수와의 대화, 실험실 투어를 통해 생명공학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진로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진규_ 어떤 계기로 생명공학을 전공하게 되셨나요?
정교수_ 지금은 자연대학 생명과학부 교수직을 맡고 있지만 대학은 독특하게도 약대를 갔어요. 생물학이며 화학, 물리학 등에 관해 공부하다보니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왜 이런 실험결과가 나왔을까’ ‘왜 이런 내용이 있는 걸까’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이왕이면 기초과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결국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됐습니다.
이진규_ 교수님의 연구실에 오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정교수_ 우리 실험실은 대학원 과정을 마친 사람들이 전국에서 지원하는데 성적표와 함께 편지를 제출하게 됩니다.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대학에 다닐 때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을 파악하고 함께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연락해서 면접을 보죠. 나 같은 경우는 면접을 굉장히 까다롭게 하는 편이예요. 며칠 뒤에 다시 연락하라고 하기도 하고 2~3번을 거절한 끝에 받아주기도 합니다. 일종의 테스트죠. 생명과학은 교수가 되려면 10년 이상 투자해야하기 때문에 얼마나 깊은 생각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거든요.
안형준_ 현재 연구 중인 분야는 무엇인지요?
정 교수_ 우리는 초파리와 생쥐를 모델동물로 이용하여 연구를 하고 있어요. 현재 한 학생이 진행하고 있는 실험 중에 초파리의 특정 신경세포를 활성화하거나 억제시켜 먹이를 먹는 행동을 조절하는 연구가 있어요. 인간의 비만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연구가 될 것 같아요.
최성윤_ 생명공학분야의 연구결과가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요?
정 교수_ 우리 실험실의 경우는 특정 질병에 관해 연구하고 있어요. 파킨슨병이나 비만, 당뇨 등 말이죠. 예를 들어 피킨슨병에 걸리는 이유가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지만 왜 그 신경세포가 죽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유전성 파킨슨병의 원인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면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지 않도록 하는 치료방법을 제안할 수 있게 되죠. 우리의 연구 목적은 사람이 걸리는 질병의 기전이 무엇인가를 연구하여 질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임승민_ 우리나라 생명공학의 수준을 알고 싶습니다.
정 교수_ 기술수준은 여타 과학 선진국들과 비슷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 수준을 10개 보유하고 있다면 선진국은 100개, 1000개 이상을 갖고 있다는 차이죠. 스포츠를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나라의 김연아, 박태환 같은 선수는 외국 선수에 전혀 뒤질 것이 없지만 미국이나 일본에는 그런 선수가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과학적 재능이 뛰어나다면 얼마든지 과학계의 김연아, 박태환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정 교수_ 과학자는 상당히 힘든 직업입니다. 때문에 과학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대학에 진학해서 다양한 과학 원서들을 접하다보면 상상하지 못한 내용들이 책 속에 있습니다.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를 발견한다면 과학은 한번 도전해볼만한 직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