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PEOPLE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

페이지 정보

본문

국인 최초 세계수학자대회(ICM) 기조강연자

수학은 사고력 근간 이루는 위대한 학문 수학 난제 도전이 수학계 발전 이끈다


수학인들의 축제인 ‘세계수학자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ICM)’가 2014년 8월 13일부터 9일간 서울에서 열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수학계의 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 세계수학자대회는 국제수학연맹의 주최로 최근 4년간 일어났던 중요한 수학적 업적들을 평가 및 시상하며, 다양한 수학분야에 관한 토론 및 강연들을 여는 전 세계 수학자들의 축제다. 세계수학자대회는 4년마다 열리는데 2014년에는 서울에서 세계 120여 개국 5,000여 명의 수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 대회에서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기조강연자로 나서는 영광을 안았다. 이는 황 교수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석학임을 공인받았음을 의미했다.


글| 편집부



“수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하며 오랜 전통을 지닌 세계수학자대회에 기조강연자로 초청됐다는 것은 수학자의 연구가 전공분야를 넘어 수학계 전체에 보고할 만큼 의미 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젊은 수학자들이 더욱 자신감을 갖고 더 큰 난제에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은 황준묵 교수는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분과 강연자로 초청받은데 이어 2014년에는 서울세계수학자대회의 기조강연자로 나서며 다시 한 번 세계적인 수학자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


새로운 생각으로 눈부신 성과 이루다


미국 노틀담대학 교수와 미국 수리과학연구소(MSRI) 연구원, 서울대 수학과 교수를 거쳐 1999년부터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황준묵 교수는 명성에 걸맞게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2001년 한국과학상 수상, 2006년 한국인 최초 세계수학자대회 초청 강연,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상 수상, 국회 올해의 과학기술인 선정, 2009년 호암상(과학상) 수상, 2010년 국가과학자 선정에 이어 2013년에는 미국수학회 초대 펠로우에 선정됐다.


그간의 성과 또한 눈부시다. 1999년 기하학 분야의 난제였던 공간 사이의 변환에 관한 라자스펠트 예상을 증명한 데 이어 40여 년간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던 변형불변성의 증명을 1997년부터 9년에 걸쳐 네 편의 논문을 통해 완성했다. 그리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 저명 학술회의와 세계 유명 대학에서 수십 회에 걸쳐 초청 강연을 하였다. 황 교수는 오랜 시간 집중해서 새로운 생각으로 깊이 있게 문제를 파고든 것이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풀리지 않은 수학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수학자들이 도전했다 실패한 문제들이기에 당연히 쉽게 풀리지는 않죠. 실패를 이겨내고 오랜 시간 투자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해서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수학의 달인이 되어 있을 겁니다.”


때문에 수학자들에게는 아이디어가 유일한 자산이다. 황 교수는 주로 책과 사람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다. 그는 “책과 논문은 수학자들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통로로, 백 년 전 논문을 인용하는 경우도 흔하다”며 “수학자들 간 의견을 교환하다보면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에 세계수학자대회를 비롯하여 학회, 세미나 등 크고 작은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가한다”고 밝혔다.


보통 소년이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기까지


사람들은 세계적인 수학자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는 황 교수가 어렸을 때부터 수학영재로 두각을 나타냈을 거라 생각하지만 기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을 만큼 수학을 아주 썩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수학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수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더더군다나 하지 않았다.


이는 수학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다. 수학자는 그저 자잘한 문제를 빠른 시간 내 푸는 학자이고 수학은 지겨운 문제풀이로만 치부했다. 차라리 아인슈타인처럼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알고 싶어 하던 현상에 답을 제시하는 물리학이 적성에 더 맞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전공으로 물리학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막상 접해본 학문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오늘날의 물리학은 새로운 이론 보다는 기술개발의 혁신에 초점을 두는 반면, 오히려 수학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해서 오랫동안 궁금해 하던 문제를 해결하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과감히 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그렇게도 소원하던 수학연구를 하게 됐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교수가 던져준 수학 미제를 풀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 연구에 진전이 없는 것이 수학자에게 흔한 일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기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황 교수는 “언제 문제를 풀어낼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내 능력으로는 못 푸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며 “표면적으로는 3년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었지만 실패를 거듭하며 오히려 그 분야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수학은 매력적인 학문… 다양한 수학분야 접하라


황 교수의 연구분야는 기하학이다. 기하학은 공간의 성질과 공간 안의 물체에 대한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다. 그는 기하학의 매력에 대해 “기하학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학문”이라고 단언한다. “나는 계산하는 것을 즐기지 않아요. 기하학이 아예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는 아니지만 기하학에서 중요한 것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이를 수학적인 논리와 결합하는 것이 바로 기하학이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비논리적이고 아날로그한 프로세스인 반면, 계산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디지털합니다. 기하학은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죠.”


황 교수는 수학에 대해 섣불리 편견을 갖지 말 것을 당부했다. 수학의 세계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수학을 체육에 비교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황 교수는 “체육에 다양한 종목이 있고 자신에게 적합한 종목이 있듯이 수학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며 “학창시절 배우는 수학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학창시절에 배운 이론이 수학의 전부라고 생각하여 매우 지겨운 학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학 때 기하학을 접한 후 수학이 굉장히 재미있는 학문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수학자가 되려한다면 다양한 수학분야를 접하며 자신이 즐길 수 있고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학자의 삶을 살며 오랫동안 궁금증으로 남아 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황 교수의 가장 큰 계획은 25년째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미제를 푸는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언젠가 수학 난제를 해결하여 그가 또 한 번 수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기를 바란다.


 
 수학자의 꿈에 한 발 다가서는 아름다운 만남 


인터뷰가 끝난 후 황준묵 교수와 수학꿈나무들 간의 만남의 자리가 마련됐다. 수학영재들로 구성된 고등학생 12명(강서고 3명, 숭문고 9명)은 수학 및 황 교수에 관한 궁금증을 쉴 새 없이 토해냈고 황 교수는 이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설명으로 학생들의 호기심을 말끔히 해결해주었다.


노지환 학생 _ 수학을 왜 배워야하나요?

황 교수 _ 수학은 지력을 키우는 최고의 과목입니다. 특히 이학이나 공학, 경제학 등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수학은 반드시 필요한 학문입니다. 또한 학교에서 다양한 분야의 수학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학습을 통해 두뇌 각 부분이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수학은 다른 어떤 과목보다 논리적인 사고를 요하기 때문에 되도록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팔근육과 다리근육이 발달한 사람이 야구나 축구를 할 때 훨씬 쉽게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미리 수학의 기본 개념을 익혀두면 나중에 더 어려운 이론을 접했을 때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김진식 학생 _ 수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황 교수 _ 나의 연구분야인 기하학을 예로 들어보죠. 기하학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이를 논리적인 부분과 결합시키는 분야입니다. 때문에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면이 논리와 결합하여 꼭 맞아떨어지는 것이 기하학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몇 년간 공들인 문제의 해답을 찾았을 때는 며칠간 잠도 못잘 정도로 흥분되고 기쁩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수학자라는 직업 역시 꽤 매력적입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적고 문제를 언제까지 풀어내야한다는 압박도 적습니다. 수학계의 분위기가 자유로운 것도 이 때문이죠.


김하성 학생 _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은 무엇인지요?
황 교수 _ 수학을 연구하고 있는 입장이라 교육 시스템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 역시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중학생 딸이 있어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는 학생 개인별 수준 차를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인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학은 다른 어떤 과목보다 사람 간 수준 차이가 큽니다. 예컨대 근육을 키우려면 약간 힘들 정도의 운동을 해야지, 너무 과하거나 쉬운 운동을 하면 역효과만 나거나 아예 효과가 없습니다. 수학 역시 자신의 실력보다 약간 어려운 수준에 도전해야 발전하지 너무 높거나 낮은 수준을 학습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수학실력을 기르기 위해 과외나 학원을 찾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그리 권장하고 싶은 방법은 아닙니다. 마치 턱걸이가 아닌 배치기를 가르쳐주는 것밖에 안되니까요. 진정한 수학실력을 기르려면 결국은 자기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학습자 스스로 판단하고 이해해서 공부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현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장형규 학생 _ 수학과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수학과의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황 교수 _ 물리학과 출신이라 수학과의 분위기에 대해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수학계의 분위기는 다른 어떤 과학분야보다 굉장히 자유롭습니다. 수학자모임에서 만나는 수학자들은 대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수줍어하며 덜 공격적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양복을 입었지만 수학자들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까닭에 세계적인 학회에서 티셔츠를 입는 일도 흔하죠.


최찬용 학생 _ 세계 수학계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느 정도 되나요?
황 교수 _ 흔히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으로 그 나라의 수학 수준을 판단하기도 하지만 이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필즈상은 수상자 수가 한정적이고 어느 정도 운도 작용해야하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세계수학자대회에 몇 명의 수학자가 초청강연자로 선정되었는지를 보는 게 의미 있습니다. 초청강연을 한다는 것은 수학자가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마치 금메달을 딴 것처럼 최고임을 인정받는 것이니까요. 우리나라는 대회 때마다 대개 2~3명이 초청강연자로 선정되는데 이는 10~20위권에 드는 수치입니다. 2014년에는 6명으로 그 수가 늘었으니 순위가 더 올라갔겠군요. 우리나라가 수학선진국이 되려면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받고 연구한 수학자가 연사로 초청되어야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그런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쉽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경우가 없어요. 이는 우리나라 수학계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젊은 수학자들이 오랜 시간 투자하여 좀 더 어려운 난제에 도전할 수 있는 연구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유선호 교사 _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학을 즐겁게 잘 할 수 있을까요?
황 교수 _ 수학도 운동과 같아서 땀 흘리지 않고 쉽게 배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 할 수는 있습니다. 취향에 맞는 운동을 하면 더 재미있게 잘 할 수 있듯이 수학도 여러 분야 중에서 자신에 맞는 분야를 선택하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 대학 3학년 때 기하학을 접하지 않았다면 수학은 재미없는 분야라고 생각하여 수학자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학생들이기에 수학의 다양한 분야를 접할 기회가 흔치 않겠지만 수학해설서 등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수학분야를 찾아 재미있게 공부하고 수학에 더 많은 흥미를 갖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