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PEOPLE

이숭덕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페이지 정보

본문

 2015 과학수사대상 수상 
법의학은 사람의 권리를 찾아주는 학문

진실 추구해 사람과 사회를 보호하다


요즘 들어 법의학이니 법과학이니 하는 용어가 사람들의 입에 부쩍 회자되고 있다. 법의학자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과학수사대 이야기를 다룬 외화가 인기를 끌고 사건을 빠르게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과학수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법의학과 법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이숭덕 교수가 제11회 과학수사대상 시상식에서 법의학 분야 수상자로 선정돼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30년 가까이 법의학 한길을 걸으며 법의학 및 과학수사 발전에 이바지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문과학적 분야인 법을 적용하다보면 자연과학적인 부분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법의학은 의학의 관점에서 법을 적용할 때 필요한 부분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흔히 법의학(Forensic Medicine)하면 죽음의 원인 등을 밝히기 위해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병리학을 주로 떠올리지만 법의학에는 다양한 영역이 있다. 이숭덕 교수에 따르면 사람이 사망했거나 사람에 대한 조사가 필요할 때 시체를 부검하는 영역을 ‘법의병리학’이라 한다. 최근 많이 연구되고 있는 분야인 ‘법의유전학’은 사람의 유전자(DNA)를 이용해 사람을 구별하는 법의학의 한 분야로 수사단서 추적이나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독극물을 검출하는 ‘법의독물학’, 치아 등으로 개인을 식별하는 ‘법치의학’, ‘배상의학’, ‘법정신의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 법의학은 학문적으로 세분화돼있지 않다.


법의학은 사람의 권리 위한 학문… 제도 개선 시급


“법의학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학문입니다. 죽은 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학문이죠.”


헛된 죽음이 없는 사회를 위해 법의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숭덕 교수는 “진실을 추구하고 사실에 근거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법의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서울대 법의학교실 연구원들과 함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의미 있는 사업을 진행했다. 제주4·3유해발굴사업에 참여해 시신 80여 구의 신원을 확인한 것이다.


이 교수는 법의학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지는 추세에 대해 환영한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학문의 수준에 비해 이를 뒷받침해줄 제도의 수준이 낮다고 꼬집는다. “법의학과 법과학은 모두 법이 따라가기 때문에 사회성이 굉장히 짙습니다. 즉 제도의존적이죠.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적절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법의학의 학문적 수준은 뛰어나지만 제도가 미비해 제한점으로 작용하고 있죠.”


그는 현 검시제도의 한계 및 법의학자의 권한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는 각자 고유의 검시제도를 두고 있다.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국가가 사망 원인 및 종류를 밝혀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겸임검시제도이다보니 전문가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고 의사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며 “우리나라에 억울한 죽음이 없다고 자신하기 어려운 것은 제도가 미비하고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가 성숙해질수록 법의학에 대한 요구가 많아질 것”이라며 “제도가 개선되면 선순환구조를 이루어 법의학이 더욱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법의학 30년 한길… 안전사회 일조



이숭덕 교수는 30년 가까이 법의학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 법의학 분야는 척박한 황무지와도 같았다. 법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서울대 의대에 다니던 그가 법의학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 것은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의대에 재학 중일 때 우리나라 법의학의 권위자인 문국진 교수를 알게 됐어요. 오랫동안 그 분을 알아오며 영향을 받았는지 대학 졸업 후 뭘 할까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법의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1987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법의학을 공부하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방통대에서 법학도 공부했다.


법의병리학과 법의유전학을 전문으로 하는 이 교수는 법의학과 관련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5년부터 서울의대 법의학교실에 몸담으며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의사로 매년 100여 차례 부검도 한다. 또한 국무총리실 소속 심의기구인 DNA신원확인정보DB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대검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회 위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최근에는 ‘포렌직 몽타주 연구팀(서울의대, 연세의대, 한양법대, 국과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자들로 구성)’을 이끌고 증거물을 생물·화학적으로 분석해 용의자의 나이, 외모, 습성, 행동 및 주거환경 등을 추정하는 ‘첨단 법과학적 수사단서 발굴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과학·ICT를 기존 사업·사회에 접목해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가 진행하고 있는 ‘비타민 프로젝트’의 7대 중점분야 중 대국민 안전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난안전SOC(비타민 S, I)에 속해 있다.


좋아하는 분야 찾아 꾸준히 노력하라


법의학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요즘 들어 부쩍 법의학자가 되겠다며 이 교수를 찾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그가 들려주는 대답은 ‘열심히 공부해서 먼저 의사가 되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법의학자만을 목표로 파고들기 것보다 시야를 넓혀 폭넓게 공부하면 흥미 있는 분야를 발견하게 되고 그래야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게 그 이유다.


이 교수는 학창시절 과학이나 의학 분야에 특별히 관심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지 않는 정도였다. 대학 입학 때도 법대와 자연대, 공대를 두고 고민하다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자연대를 선택했다.


이 교수는 과학과 과학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사회에서 논리적인 부분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데 논리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가 과학이고 그래서 과학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교수는 과학과 과학교육이 발전을 이루려면 “먼저 사회가 변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교육의 문제는 교육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가 투영돼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느냐하는 문제도 사회의 조급함이 투영돼 장기적인 투자를 안 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궁금증을 갖고 끝까지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조언하는 이 교수. 그는 “앞으로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흥미와 관심을 갖고 꾸준히 해결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의미를 찾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MINI INTERVIEW 
더 큰 가능성을 위해 크고 넓게 생각하세요”

이숭덕 교수와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강서고등학교 1, 2학년 16명과 숭문고등학교 2학년 6명으로 이루어진 탐방단은 이 교수와 과학 및 법의학에 관한 질의응답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는 한편 부검실과 실험실을 둘러보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양준형 학생 | 법의학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으셨는데 법의학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숭덕 교수 | 법의학은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검을 함으로써 죽은 사람의 권리와 산 사람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죠.

노지환 학생 | 유전학과 범죄학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이숭덕 교수 | 예를 들어 사건 현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어떻게 알까요? DNA 검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유전자를 통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몇 살인지를 파악하게 되죠. 유전자 지문은 처음에는 개인 식별에 이용됐지만 점점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많이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대비해 서울대 법의학교실 연구팀은 연구 및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광진 학생 | 범죄자의 유전자 정보를 구축한다고 알고 있는데 인권의 측면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나요?

이숭덕 교수 | DNA는 굉장히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할 때는 항상 윤리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개인 식별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오직 사람을 구별하는 용도로만 사용할 뿐 형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수의 국가들이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유전 정보를 관리하는 제도를 갖고 있는데 이는 범죄자의 유전자 지문을 데이터베이스화시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신원 확인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선호 교사 | 교수님처럼 법의학을 하려는 학생들에게 도움 말씀을 해주세요.

이숭덕 교수 | 무조건 법의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좋습니다. 여러 가지를 접하다보면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생길 것이고 그것이 법의학이라면 그 때 선택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법의학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으면 합니다. 법의학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부검을 하기 때문에 우리 그리고 사회를 위한 개념이 포함돼 있습니다. 여러분만을 위한 공부가 아닌 주위를 살펴보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곧 법의학이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강민재 학생 | 법의학이라는 학문을 하시면서 앞으로 지향하시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이숭덕 교수 | 법의학은 여러 영역에서 할 수 있고 그 영역에 따라 해야 할 임무는 다릅니다. 나는 대학 교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교육과 연구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후배를 양성하고 법의학 분야가 발전할 수 있도록 법의학 관련 학회와 학술지를 통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유선호 교사 | 과학의 중요성에 대해 한말씀 해주세요.

이숭덕 교수 | 과학이 왜 중요할까요? 과학은 팩트(fact)가 아니라 리즈닝(reasoning) 즉 사고입니다. 수학과 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리즈닝하는 사고력과 관련 있기 때문이죠. 외우는 것보다는 사고하는 방식이 점점 중요해지는 추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