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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 단장 IBS 지하실험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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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지하 1,000m에 세워진 실험실!

우주 탄생의 비밀 밝힌다


어스름 땅거미가 내리고, 검푸른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우주 저 멀리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우주 전체를 100으로 봤을 때 수소 헬륨 등 원소가 4%, 나머지 96%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이 암흑물질을 찾기 위해 미국,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등 세계 주요 선진국은 지하에 거대 연구실을 갖추고 경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0월 강원도 정선 예미산 지하 1,000m에 세계 6번째 규모의 고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을 구축하며 암흑물질 탐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을 이끄는 김영덕 단장이 있다.


국내 최대 고심도 지하실험실, 예미랩


2022년 10월 5일 강원도 정선군에선 우리나라 과학계에 기념비적인 날로 기억될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최초로 대형 지하실험실이 준공된 날이다. 이 지하실험실은 지하 1,000m에 위치한 예미랩(YemiLab)이다. 예미랩은 기초과학연구원(IBS)이 2016년부터 구축하기 시작해 2022년 9월 공사를 마무리했다.


예미랩은 승강기에서 시작한다. 승강기는 초속 4m짜리 고속 승강기로 15층 아파트에 설치되는 일반 승강기보다 4배나 빠르게 움직인다. 무려 600m나 되는 수직터널을 이동한다.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빌딩인 잠실 롯데 타워의 높이가 555m인데, 그보다 더 깊이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셈이다. 이 시설은 수직으로 아주 깊이 내려가지만, 내려가서 만나는 터널은 일자여서 터널 안에서 길을 잃을 위험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한 예미랩은 저 하늘 위의 우주를 연구한다.


우주의 26%를 차지하지만 아직까지 그 정체를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은 암흑물질(Dark Matter), 그리고 현재 우주의 생성을 가능케 한 ‘중성미자(neutrino)’의 성질을 규명하는 것이 이곳의 목표다. 암흑물질은 그 이름부터 정체가 암흑에 싸여있는 물질이란 뜻이다. 별, 성운 등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닌, 미지의 물질이 있어야만 설명 가능한 현상이 속속 관측되면서 고안된 이론 속 물질이다. 질량이 있어 주변 물질과 중력을 통해 상호작용한다는 점 외에는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 중성미자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다.


관측된 적은 있지만, 아직 질량이나 반입자의 특성 등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런데 왜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해 산꼭대기가 아닌 지하 1,000m의 세계로 내려갔을까. 예미랩의 주목적인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검출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암흑물질 탐색과 중성미자 연구를 위해서는 미세한 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민감한 장비가 필요하다. 특히 우주 방사선 등 잡음으로 인해 신호를 포착하는 것이 어렵다. 이 때문에 실험 시설은 암석과 흙 등이 ‘천연 보호막’ 역할을 하는 지하 깊은 곳에 설치된다. 청력검사를 방음실에서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하로 내려와도 여전히 방해꾼이 많다. 먼지가 혼란을 줄 수 있는 것은 물론, 암석조차도 방사능을 방출해 잡음을 일으킬 수 있다.


다행히 예미산은 화강암 등에 비해 훨씬 방사능을 덜 내뿜는 석회암 산이다. 지하 1,000m에 위치한 예미랩에서는 이론상 지표면 대비 100만 분의 1 수준으로 우주선(cosmic ray)을 차단할 수 있다. 예미랩은 IBS 지하실험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김영덕 단장의 작품이다. 한국 최초의 심층 실험시설인 예미랩을 만든 이유를 묻자 “예미랩이 구축되기 전까지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 내 지하 700m에 위치한 터널 한쪽에서 ‘셋방살이’ 연구를 해왔는데,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출범할 때 계획했던 실험을 하기에 너무 협소했다.”고 답했다. IBS는 올해부터 양양 지하실험실의 실험 설비들을 차례로 예미랩으로 옮기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한국의 1세대 실험 물리학자, 김영덕 단장


김영덕 단장은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한국의 1세대 실험 물리학자다. 그의 연구 이력은 국내 우주입자 실험연구와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김영덕 단장이 원래부터 암흑물질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 원자핵공학을 공부한 그는 국내에 들어오기 전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가속기로 할 수 있는 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나 세종대 조교수로 부임한 1998년부터 그는 양성자나 전하 등 입자를 가속시키는 실험기기인 가속기 없이도 실험할 수 있는 핵과 입자실험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엔 가속기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실험을 계속하고 싶었던 그는 김선기 서울대 교수의 제의로 암흑물질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국내 최초로 김선기 서울대 교수와 김홍주 경북대 교수 등 3인으로 구성된 ‘KIMS(Korean Invisible Mass Search) 실험팀’이 구성됐다. “한국엔 가속기가 없으니 실험을 계속 할 수 없었죠. 당시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운영하는 LHC(거대강입자가속기)같은 가속기는 만들 엄두도 못 냈죠. 암흑물질은 가속기 없이도 입자물리학 연구를 할 수 있고, 또 국내 실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3명이 의기투합하게 된 거죠.” 이렇게 국내 최초의 암흑물질 실험인 ‘KIMS(Korean Invisible Mass Search)실험’은 1997년 청평 양수발전소에서 시작됐다.


장비를 개발하고, 배경 방사능을 줄이고, 암흑물질을 검출하는 순수한 CsI(세슘아이오딘) 결정을 새로 개발하는 데만 5~6년이 지나갔다. 그렇게 CsI 결정 1개로 시작해 결정 4개를 사용한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여 2007년에는 미국 학술지 PRL(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연구 논문을 냈다. 입자물리 실험에서 외국 시설이 아닌 한국에서 한국 연구진이 실험 계획, 장치 개발, 실험 진행을 직접 수행한 결과를 PRL 논문으로 최초로 실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2006년에는 김홍주 경북대 교수의 제안으로 원자력발전소를 활용한 중성미자의 성질을 연구하기 위한 이중베타붕괴 검출 실험을 시작했다.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를 측정해서 중성미자가 다른 종류로 변환되는 정도를 밝혀냈다. 우리나라 연구진이 입자물리학에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다.이후 이 검출 실험은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이 참여하는 국제 공동연구로 발전하여 AMoRE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KIMS실험 역시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출범한 뒤인 2016년 9월 COSINE-100실험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미국 예일대학, 영국 셰필드대학 그룹이 하던 DM-Ice실험과의 공동연구로 전환되면서 국제실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 암흑물질·중성미자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예미랩 완공을 계기로 양양 지하실험실에서 진행했던 연구들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 COSINE-200(암흑물질탐색) 연구와 AMoRE-II(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 연구 등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한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26.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질이지만, 현재까지 관측된 적 없다. 암흑물질의 후보로 거론되는 입자는 여럿인데, IBS는 그중에서도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라는 뜻을 가진 ‘윔프(WIMP)’를 찾아내기 위한 실험을 설계했다.


현재까지 윔프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것은 이탈리아 그랑사소 입자물리연구소에 본거지를 둔 국제공동연구팀의 DAMA 실험이 유일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어느 연구팀도 DAMA 실험이 측정한 에너지 범위에서 윔프 신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랑사소국립연구소의 발견이 ‘과학적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과거 DAMA실험은 암흑물질로서 윔프를 탐색하는 과학자들의 주요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양양 지하실험실에서 소규모로 DAMA 연구팀의 실험을 재현해왔다. 그리고 과거의 DAMA가 주장했던 것처럼 ‘전통적인 암흑물질로서의 윔프는 관측되지 않았다’는 실험결과를 네이처와 피지컬 리뷰레터스 등 관련 주요 학회지에 발표했다. 하지만 DAMA 실험과 완벽히 같은 조건에서 실험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또 다른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로는 암흑물질이 발견된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예미랩에서는 검출기에 들어가는 결정의 양을 이전보다 2배 늘려 COSINE-200 실험을 이어간다. 특히 검출기의 배경방사능을 현재보다 3배 이상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파우더 정제부터 결정성장 검출기 제작에 이르는 핵심 기술을 기초과학연구원의 연구진이 직접 개발하며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실험이 성공적으로 구축되면 세계 최고 성능의 암흑물질 탐색 검출기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중성미자는 아직 그 질량도 확인되지 않은 작은 입자로, 물질을 구성하는 12개의 기본 입자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예미랩의 AMoRE 실험은 중성미자의 질량을 파악하기 위해 핵분열의 일종인 베타붕괴를 이용한다. 또 직경 20m, 높이 20m의 원기둥 모양의 대형 공간에 약 2,500톤 규모의 액체 섬광물질을 채워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를 탐구하는 대규모 실험도 예정되어 있다. ​“중성미자는 자연을 이루는 기본입자 중 하나입니다.


전기적으로 중성(中性)이고 질량이 아주 작은데(微子), 최소 세 종류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과학계에서 중성미자 질량을 아직 밝히지 못했습니다. 중성미자 세 개 간의 질량 차이는 아는데, 절대질량은 몰라요. 특히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인지 아닌지를 모르는데, 이걸 알아내는 게 AMoRE실험 목표입니다.” 양양 지하실험실에서는 중성미자의 붕괴를 탐지할 결정 5개를 이용한 파일럿 실험을 진행했지만, 연구단은 이중 베타 붕괴가 비교적 잘 일어나는 몰리브덴-100의 고순도 결정을 200㎏까지 키워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AMoRE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다. 연구팀은 계획한 100kg의 100Mo 동위원소를 확보하였고 예미랩의 환경도 좋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비추고 있다.


NASA의 자유낙하 실험, 지진관측 등 공동연구 문 활짝


예미랩은 800m 길이의 복도형 터널을 중심으로 중성미자 없는 이중 베타 붕괴 현상을 검증하는 AMoRE 실험실과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COSINE 실험실을 비롯해 외부 연구진이 참여하는 실험실 공간 등 12개 실험실 공간이 마련됐다. 연구를 위해선 지하 1,000m에 전기는 물론 산소가 필요하다.


예미랩은 한 번에 2,000kW까지 사용 가능한 전기시설과 연구실 전체에 필터링한 공기를 주입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먼지가 많은 특성을 고려해 하루에 연구실 전체 부피만큼의 공기를 6번 주입시켜야 한다. 눈에 띄는 곳이 있다면 피난시설이다. 무려 40명이 72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식량과 시설을 갖춘 곳이다. 화재 등 재난 발생에 대비해 외부로부터 완벽 차단되며 산소와 전기도 공급된다. 예미랩은 지하 1,000m에 위치한 국내 최고 심도의 지하실험시설이다. 면적은 약 3,000㎡ 규모로 세계에서 6번째 수준이다.


1,000m 지하 공간을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된 만큼, 국내외 연구기관의 관심도 크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여러 연구진이 공간 활용 및 공동 연구를 제안해 왔으며, 그중 몇 개 기관에는 공간이 제공됐다. 기상청은 이곳에 ‘표준지진계’를 두고 지표면의 지진계와의 오차를 확인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연구 공간은 암반 연구를 위해 표면 벽을 시멘트 등으로 처리하지 않고 자연 상태로 뒀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수직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자유 낙하할 때 생명체의 반응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며 협력 요청이 왔다.


이외에도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경북대학교 등과 예미랩을 공동 활용할 방침이다. 김영덕 단장은 “예미랩 구축으로 본격적인 암흑물질 탐색과 중성미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예미랩은 대학이나 다른 출연연구기관 수준에서 기존에 수행할 수 없었던 특별한 공간을 국내에 마련한 만큼, 여러 분야에서 예미랩을 활용하여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