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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과학인재에게 전하는 희망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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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상상하고, 도전하라


글 | KAIST 총장 강성구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어느정도 틀에서 벗어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에 맞춰가려고 눈치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생을 멀리 보는 차원에서 다소 엉뚱하더라도 자기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을 찾아봐야 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과학적 사고의 시작입니다.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든 상상하면 됩니다. 항상 옳은 답을 상상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틀린 답은 그 나름대로 경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노벨상을 패러디해서 만든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웃기고, 하찮고, 어이없을 정도로 엉뚱한 과학적 발상을 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입니다. 예를 들어, '눈 감은 사람 없이 단체 사진 찍는 법'을 연구한 호주 학자들에게는 수학상이 돌아갔습니다. 이들의 계산은 간단합니다. 사람이 1분당 눈을 깜빡이는 횟수는 10회, 한번 깜빡거릴 때 걸리는 시간은 0.25초이기 때문에 '인원수 ÷ 3'을 해서 나오는 숫자만큼 촬영하면 모두가 눈을 뜬 단체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명 이하의 인원을 촬영할 경우에만 해당하고, 조명이 좋지 않을 경우엔 나누기 3이 아닌 나누기 2를 해야 한다는 세세한 조건까지 달아놓았습니다.


그 외에도, ‘닭의 털을 뽑아 날려 토네이도 풍속을 측정하는 방법’에는 기상학 상이, '소똥에서 바닐라 향료를 추출하는 방법'에는 화학상이, 자신의 오른손과 왼손 관절을 실험 대상으로 60년간 관찰한 끝에 '손가락 관절을 소리 나게 꺾는 습관이 관절염의 원인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한 사람에게는 의학상이 돌아갔습니다.


과학은 호기심이 주는 즐거움에서 시작되는 학문


하지만 그저 신이 나게 웃고 떠들자고 이 괴짜들의 탐구활동에 상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엉뚱한 실험 속에 담겨있는 참신한 발상을 재평가하고, 대중의 과학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이그 노벨상에 담긴 속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0년도 이그 노벨상의 물리학 부문 수상자인 안드레 가임이란 인물을 눈여겨볼 만 합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한 대학에서 연구하던 당시, 매주 금요일엔 흥미 위주의 실험을 했습니다. 처음엔 매일같이 반복되는 연구에서 잠깐 일탈하고 싶은 호기심이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과학적 사실에 빠져들어 고가의 장비가 망가지는 위험까지 감수해가며 특이한 실험들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중 하나가 개구리 공중부양 실험입니다. 어떤 물체를 자기장에 놓으면 그에 반발하는 힘이 작용해 공중으로 떠오르는 ‘반자성 부상’을 확인하기 위해 개구리를 강한 자성에 노출시킨 것입니다. 그 결과, 자성과 중력이 균형을 이룬 순간 개구리는 공중에 떠올랐습니다. 이 엉뚱한 실험으로 이그 노벨상을 받고 10년이 지난 2010년, 안드레 가임은 그래핀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그 노벨상과 노벨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과학은 즐거움에서 시작되는 학문입니다. 연구자가 가진 순수한 호기심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상상을 현실에 옮겨놓는 과정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발명과 발견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조금 엉뚱하더라도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찾아보자


우리 주변에는 각기 다른 장점과 가능성을 지닌 과학 인재들이 많습니다. 헌데, 이상하게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반짝반짝하던 재능과 순수한 호기심은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획일화된 경쟁 사회의 틀에 자신을 맞추는 일에, 남과 비슷해지기 위해 애쓰는 일에 열중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 되고,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엘리트로 살아가는 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어느정도 틀에서 벗어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에 맞춰가려고 눈치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생을 멀리 보는 차원에서 다소 엉뚱하더라도 자기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을 찾아봐야 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과학적 사고의 시작입니다.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든 상상하면 됩니다. 항상 옳은 답을 상상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틀린 답은 그 나름대로 경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들과 다를 것을, 그래서 틀린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안드레 가임은 논문의 공동 저자로 실험에 이용했던 햄스터의 이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H.A.M.S. ter Tisha’라고 표기했는데, 이 햄스터가 연구를 완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엄숙주의가 만연한 과학계에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연구를 할 때는 스카치테이프로 흑연의 표면을 얇게 분리해내는 방식으로 그래핀을 추출해냈습니다. 과학적 호기심 앞에서는 권위도 상식도 체면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안드레 가임이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발견해내고,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것을 증명해내고, 인류를 진일보시킬 첨단 기술을 만들어내는 과학자의 삶이란 연구와 경쟁의 연속입니다.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하고, 그만큼의 실패를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어디선가 연구비를 지원받아야만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과학은 순수한 호기심이 주는 즐거움에서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그 후에는 탐구하려는 열정에 끊임없이 자극받아야 합니다. 연구하는 즐거움만이 연구하는 어려움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인재가 가장 큰 자원인 나라입니다. 전쟁 직후 폐허가 되었던 땅에서 지금의 국가를 이뤄놓은 것은 여러 방면에서 제 몫을 다한 인재들 덕분입니다. 지금까지는 유라시아 대륙 끝의 작은 반도가 우리 영토였지만 이제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과학영토에서 국력을 경쟁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과학 하는 즐거움을 누리십시오.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상상하고, 도전하는 당신을 통해 21세기 대한민국의 과학영토는 확장될 것입니다.


필자소개
강성모 KAIST 총장은 반도체 설계 분야의 국제적인 석학으로 연세대학교 4학년 때 유학길에 올라 UC 버클리대에서 전기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 샴페인 전기전산학과 학과장, UC산타크루즈 공대 학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4년제 대학인 UC 머시드대 총장을 지냈으며 지난 2013년 2월 KAIST 15대 총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