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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비과학, 그 경계 뛰어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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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평평하다구?과학을 신뢰하자!

인간 욕망과 특별함에 제동 거는 현대과학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굳이 과학적 증거들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비행기만 한 번 탑승해 봐도 지구의 둥근 호를 어렴풋이 볼 수 있다. 아직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것도 많지만 적어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만큼은 이제 아무 의문의 여지도 없는 진실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2017년 현재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진지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지리학과 지구과학, 천문학 등의 성과를 깡그리 부정하는 참으로 놀라운, 심지어 참신하기까지도 한 주장이다.


지구는 구형이 아니라 접시 형태의 둥글납작한 원반


‘지구 평면설’(Flat earth theory)이라는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플랫 어써(Flat Earther) 라고 불리는데 ‘평면 지구 학회’(Flat earth society) 등의 웹페이지를 개설하고 이론을 설명하는 다수의 영상을 제작하는 등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최근에는 NBA의 전설이었던 샤킬 오닐마저 이 주장에 동참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으나, 비난이 쏟아지자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꾼 해프닝도 있었다. 그는 교육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이들 지구 평면론자에 따르면 지구는 구형이 아니라 접시 형태의 둥글납작한 원반이며, 북극이 그 원의 중심에 있고 우리가 ‘남극이라 여기는’ 지역은 거대한 얼음벽으로 둘러싸인 원반의 긴 둘레, 즉 테두리다. 그들은 그 증거 중 하나로 UN 깃발의 형태를 내세우기도 하는데, UN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이 ‘진실’을 알면서도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과도 연결된다. 물론 지구는 둥글고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대 과학은 물론 그 이전부터 합리적인 관측과 추론, 그리고 여행의 경험을 통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선사시대,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던 우리의 조상들에게 세상은 그저 주변의 산에 둘러싸인 지역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는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할 이유는 물론, 지구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미 2천5백년 전에 고급스러운 문명을 일군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세상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작은 지역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아시아 Asia 는 지중해 인근의 터키와 시리아 지역이 전부였고, 아프리카 Africa 도 이집트와 리비아 정도였으니 –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모두 그 시대에 만들어진 그리스어 표현이다 – 거대한 구형의 지구는 그 시대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스어로 지구를 뜻하는 ‘테라’(Terra)는 물론 현대 영어의 ‘어스’(Earth)도 지구라는 뜻과 함께 흙의 의미도 가진 점을 봐도 세상이 구형일지 모른다는 관념은 과거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천재적인 학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알려진 기원전 6세기의 피타고라스는 구가 가진 ‘형태적 순수성’ 때문에 신의 작품인 지구는 완전한 구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물론 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론적으로는 옳은 방향이었다는 점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다. 200여년 뒤에 살았던 서양 철학의 원조 아리스토텔레스는 월식 때 달에 생기는 지구의 그림자를 근거로 관측에 근거한 과학적인 지구 구형론을 펼쳤다. 초중학교때 배우는 수평선 너머 다가오는 배의 돛대가 점점 커지는 것을 증거로 내세운 것도 바로 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구형이 된 이유를 피타고라스의 이상론과는 달리 세상 모든 물질들이 땅으로 떨어진다는 사실, 즉 한 점으로 모이기 때문으로 해석했는데 이 역시 관측에 기초한 자연과학적 접근이며, 실제로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중력을 통해 형성된 과정과 원칙적으로 같다는 점에서 대단히 합리적인 주장이었다.


고대 지구 구형론에 정점을 찍은 사건은 기원전 240년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계산이다. 그는 정오에 이집트의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간의 그림자 길이가 다르다는 점을 통해 구형 지구의 둘레를 실제와 10% 정도의 오차 내에서 계산해 냈는데, 2200년 전으로는 믿기 어려운 정확성으로 발상이나 이론, 계산에 이르기까지 현대 과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가 몰락하고 북유럽 게르만족 중심의 중세로 들어서며 이런 그리스의 앞선 과학적 사고와 지식은 잊혀지게 되었고, 예전의 지구 평면설이 다시 상식이 되어 버렸다.


지구의 형태에 대해 유럽인들이 다시 과학적인 사고를 하게 된 것은 지구중심설(천동설)이 담긴 그리스인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가 이슬람 세계에서 역수입된 15세기가 지나서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은 결론적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지구와 태양, 행성 등을 구형의 천체로 파악하고 그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낸 정교한 이론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오히려 잊혀지고 버려졌던 고대 그리스의 각종 철학과 과학을 적이나 다름없던 이슬람 세계에서 보존하고 발전시킨 것은 이후 인류 문명을 위해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른바 지리상 발견 시대를 지나면서 지구가 구형이라는 사실은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검증되기 시작했다. 바스코 다 가마와 마젤란 등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가들이 등장했고, 항해기술과 항로가 발달하며 지구는 점점 작아져 갔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는 여행을 시작한 무렵에는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꽤 알려져 있었기에 동쪽의 육로가 아닌 서쪽의 바다를 택했던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현대적 과학기술이 등장하면서 열기구와 비행선, 그리고 비행기로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지구의 곡면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고, 급기야 인류는 달과 화성 등 다른 천체까지 진출해 둥근 지구의 사진을 찍어 보내기에 이르렀다.


존재하지 않는 남극 때문에 남극점도 없다


 오랜 세월 역사적인 검증이 이어지고 우주에서 찍은 사진을 비롯한 수많은 증거들이 있는데도 지구 평면론자들은 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물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근거’들을 내세우고 있다. 지구 평면론에 따르면 남극은 사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남극점이라는 것도 없고 아무도 남극 깊숙이 들어갈 수 없으며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실제로 우리가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명백한 착오라서 과학적으로 검증할 차원의 문제조차 아니다. 이미 1956년 남극점에 아문센-스콧 기지가 설립되어 지금도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빅뱅 때의 중력파 검출설로 한때 노벨상 후보로도 거론된 ‘바이셉(BICEP)2’ 전파망원경이 바로 이곳에서 작동 중인데, 이런 사실은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 즉시 확인 가능한 알려진 팩트다.


지구 평면론자들이 내세우는 다른 근거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남미 지역을 오갈 때 남극 상공을 지나는 직항로가 훨씬 가까운데도 두바이 등 아주 먼 지역을 거쳐 간다는 점이다. 당연히, 남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남극을 횡단할 수 없고 이런 이상한 항로가 바로 그 증거라는 것이다. 여기에 솔깃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실제로는 남극대륙 옆을 지나 호주 시드니에서 칠레의 산티아고를 오가는 직항로가 있다. 게다가 남반구는 북반구보다 인구가 훨씬 적기 때문에 이렇게 먼 대륙을 직접 연결하는 항로 자체가 많지 않다. 다시 말해 항로가 복잡한 것은 단지 다른 곳에 기착함으로써 승객을 많이 태우기 위한 항공사의 경제적 필요 때문인 것이다. 지구 평면론자들이 이런 식의 불합리한 ‘증거’들은 의심없이 믿는 가운데, 정작 오랜 세월동안 경험과 과학을 통해 밝혀낸 구형 지구의 증거는 모두 부정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사고방식이다. 그들은 심지어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이 찍어 보낸 지구 사진들도 모조리 합성이나 조작이라고 무시해 버린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관점에 따라 스스로 증거를 취사선택하는 통탄할 만치 비과학적인 태도다.


과학적 상식 부정하는 것은 집요한 인간 욕망과 관련


이들은 왜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고 심지어 이를 전파하는데 집착하기까지 할까? 아마도 스스로 특별하고자 하는 인간의 집요한 욕망과 관련된 심리일 것이다. 신이 인간만을 특별히 창조했다는 대부분 종교의 인류 탄생 신화에서부터 지구가 전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구중심설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지구상의 다른 생물은 물론 우주 속 모든 것과 차별화되는 지위를 갈망하고 또 오랜 기간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인류의 그런 특별함에 제동을 건다. 과학이 말하는 138억년의 우주보다는 종교 원리주의가 주장하는 6천 살의 우주에서 인간의 크기는 훨씬 커 보인다. 수조 개의 은하 속 천억 개의 별 중 행성 하나인 지구보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괴상한 접시 지구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또 사람들은 세상에는 감춰진 중요한 비밀이 있고 자신이 그것에 접근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종류를 막론하고 음모론을 신봉하는 심리는 대개 이런 것인데, 얼마 전 작고한 기호학자이자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명작 <푸코의 진자>에서 통렬하게 지적되기도 했다. 실제로 지구 평면설에는 다양한 음모론이 뒤섞여 있다. 각국 정부는 지구가 원반 형태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고, 이를 감추기 위해 남극 안쪽(얼음벽의 바깥)으로 일반인이 넘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 원반 위에는 투명하고 단단한 ‘돔’이 씌워져 있어서 우리들은 그 아래서 영화 <트루먼 쇼> 같은 조작된 삶을 살고 있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펼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이 지구 평면설을 알리는 것은 거짓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벗어나 진실과 자유를 얻기 위한 숭고한 노력으로 여겨지는데, 이런 허상적인 구원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마치 사이비 종교에 가까운 이런 동기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객관적으로 정립된 과학적 사실 중 하나인 구형의 지구를 부정하게 만든다.


과학이 밝혀주는 세계의 비밀은 경이로움 그 자체


사실 우리들 모두의 내면에도 이런 욕구들이 기회만을 엿보며 꿈틀대고 있다. 본 것을 과장하고 겪은 일을 치장하는 것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존재의 무게를 걸고 오랜 검증을 거쳐 온 과학적 상식마저 부정하는 것은 상궤를 벗어난 태도다. 실은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고가 아니라 과학이 드러내는 우주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두려움의 발로일 뿐이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시공간을 축소하고 세상을 신화 속에 구겨 넣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138억년 된 우주의 엄청난 스케일과 자발적 다양성, 진화의 법칙 하에 생명이 넘실대는 이 지구가 누군가가 건설한 뚜겅 덮인 원반 세계보다 놀랍지 않다면 그야말로 수긍할 수 없는 생각이다. 우리들의 존재와 삶이야말로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인 기적 그 자체다. 과학이 밝혀주는 이 자연과 생명의 드라마는 우리의 상상력이나 스토리텔링 기술 따위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고도 찬란한 것이다.


원종우 대표님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다가 20대 중반에 인디레이블 운동을 주창, 스스로 록 뮤지션으로 데뷔하고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2008년 SBS 창사 특집 환경 다큐멘터리〈코난의 시대〉작가로 휴스턴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2012년에《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 유럽편》을 출간해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14년에는 과학과 역사, 우주적 상상력을 결합한 다큐멘터테인먼트《태양계 연대기》를 출간해 과학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최근에는 과학자, 작가,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 의 과학 전시, 강연, 공연을 기획·연출하면서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