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LIFE

에너지 혁명의 꿈, 인공태양

페이지 정보

본문

더욱 가까워진 ‘과학이야기’

미래를 여는 꿈의 ‘핵융합에너지’


태양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별이다.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천체는 ‘항성’으로 언제나 빛을 내는 천체라는 뜻이다. 항성은 언제나 빛나는 존재이니 당연히 스스로 빛을 낸다. 빛은 에너지의 결과일 텐데, 태양은 어떻게 빛을 내고 있을까? 바로 핵융합이다. 태양은 거대한 수소 덩어리이다. 수소의 원자핵이 충돌하여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는 핵융합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질량이 줄어드는데 줄어든 질량이 바로 태양의 빛과 열이라는 에너지이다.


줄어든 질량은 어떻게 에너지가 되는 것일까.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과학에 관심이 없는 이라도 한 번쯤은 보았을 E=mc2이라는 식은 질량과 에너지가 사실상 동등하며 상호 교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 과학의 상징과도 같은 이 공식은 물질과 에너지의 경계를 단숨에 허물어버린다. 태양은 이처럼 핵융합 반응을 통해 지난 50억년 동안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생성해냈고, 그 에너지는 지구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에너지의 근원이기도 하다.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에서 풍력, 수력과 같은 자연의 현상을 이용하는 에너지까지. 태양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의 핵융합 반응을 이용하여 지구에서도 태양처럼 무한하고 청정한 에너지를 만들 순 없을까? 이 질문의 해답이 바로 ‘인공태양’이다.


연료, 플라즈마, 용기… 태양을 가두는 3가지 조건


인공태양은 말 그대로 사람의 힘으로 만든 태양이다. 태양처럼 자연적으로 핵융합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인공태양은 어떤 원리일까? 먼저 태양이 어떤 환경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태양의 중심 온도는 약 1,500만℃, 질량은 무려 지구의 33만 배에 달한다. 이처럼 태양의 엄청난 중력과 온도 덕분에 태양을 이루는 수소 기체는 일반적인 기체 상태가 아닌 플라즈마 상태로 존재한다.


플라즈마는 흔히 물질의 네 번째 상태라고 불리는데 기체 상태에 에너지를 가했을 때 원자를 이루는 원자핵과 전자가 서로 분리되며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극을 띄는 원자핵은 같은 극의 원자핵을 만나면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밀어내야 하지만 태양의 고온과 중력 때문에 척력을 이겨내고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지구에서도 유사한 조건들이 필요하다. 핵융합의 연료와 초고온의 플라즈마, 그리고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수 있도록 초고온의 플라즈마 상태를 유지하고 가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먼저 연료는 바닷물만 있으면 가능하다. 태양에서는 다양한 수소 동위원소들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면 지구에서는 수소의 동위원소 중에서도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반응이 가장 효율이 높다.


중수소는 바닷물 1L당 0.03g을 얻을 수 있어 거의 무한하게 확보할 수 있다. 나머지 연료인 삼중수소는 자연에서 존재하는 양은 매우 적지만 지표면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리튬을 이용해 만들어 낼 수 있다. 리튬은 바닷물을 이용해서도 채취가 가능하다. 다음 조건인 초고온 플라즈마는 어떤가. 태양에서는 고온 고압 덕분에 1,500만℃ 정도의 플라즈마 상태에서도 활발하게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반면, 지구에서 핵융합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려 1억℃ 이상의 플라즈마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1억℃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가두고 유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철이 녹는 온도는 약 1,500℃, 열에 가장 강하다는 텅스텐도 3,000~4,000℃면 녹아버린다. 과학자들은 1억℃ 초고온 플라즈마를 가두고 유지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을 했고 마침내 방법을 찾아냈다. 1억℃의 플라즈마를 가두는 그릇은 바로 ‘자기장’이다.


전기적 성질을 띄는 플라즈마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기장으로 플라즈마가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두는 것이다. 즉, 인공태양은 자기장을 이용하여 1억℃ 이상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어 핵융합 반응을 지구상에 구현하는 장치이다. 자기장을 이용하여 플라즈마를 가두는 인공태양 장치의 종류에도 여러 콘셉트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도넛 모양의 공간에 플라즈마를 가두는 형태인 ‘토카막’ 형태의 인공태양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실용화에 가까운 콘셉트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K-신드롬의 원조, 우리나라의 인공태양 KSTAR


우리나라에도 인공태양이 있다. 이름은 KSTAR. 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의 약자로 최첨단 핵융합 연구를 위해 한국에서 만든 초전도 토카막이라는 뜻이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약 12년에 걸쳐 우리 기술로 완성한 자랑스러운 한국의 인공태양이다. KSTAR는 2007년 완공 후 이듬해인 2008년 첫 플라즈마 발생 실험에 성공하였다. 첫 실험에서 플라즈마를 바로 켜는 데 성공한 것은 전 세계 핵융합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KSTAR는 2008년 첫 실험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매년 안정적으로 실험을 진행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핵융합 장치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KSTAR가 더욱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초전도자석’에 있다.


인공태양이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서는 높은 자기장을 장시간 유지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초전도자석이다. KSTAR 이전의 핵융합 장치들은 일반 구리로 제작된 상전도 자석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큰 전류를 흘려줄 경우 저항으로 인해 엄청난 열이 발생해 오랜 시간 운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초전도자석은 특정 온도 이하로 냉각해 주면 저항이 없어지는 특성 덕분에 오랜 시간 높은 자기장을 유지할 수 있다.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24시간 초고온 플라즈마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초전도자석을 사용하는 것은 필수이다. 초전도자석은 영하 269℃에서 초전도성을 띄기 시작한다.


따라서 KSTAR와 같은 인공태양 장치들은 영하 269℃의 초전도자석이 만들어내는 강한 자기장으로 1억℃의 플라즈마를 가두는 장치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그릇으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을 담아내는 셈이다. KSTAR는 지난 2021년 핵융합 실현의 핵심인 이온온도 기준 1억℃ 초고온 플라즈마를 30초간 운전하는 데 성공하여 세계 최장기록을 달성하였다. KSTAR는 2026년까지 초고온 플라즈마 운전 300초 달성을 목표하고 있다.


KSTAR,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 등 2050년 핵융합 전력생산 목표


현재 인공태양으로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아직 핵융합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어렵다. KSTAR와 같은 인공태양 장치는 엄밀히 말하면 전기를 생산하는 진짜 인공태양을 만들기 위하여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장시간 가두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 장치이다. KSTAR의 다음 단계로는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이 기다리고 있다. ITER 사업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유럽,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7개국이 핵융합을 통한 대용량에너지 발전 가능성을 과학기술적으로 실증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핵융합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인류 최대의 과학기술 협력 프로젝트이다.


ITER은 현재 프랑스 카다라쉬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데, ITER 건설에 필요한 장치들을 각 회원국들이 제작하여 조달하면 프랑스 현지에서 최종 조립이 진행되는 방법으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핵융합로의 핵심 부품인 진공용기, 열차폐체 등을 비롯하여 총 9개 품목의 조달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ITER은 공정률 77%를 넘어섰다. 이처럼 ITER의 완공이 가시권으로 다가오며 ITER의 다음 단계인 핵융합 실증로 건설을 위한 발걸음도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특히 ITER가 핵융합의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활용하여 본격적인 실험에 돌입하는 2035년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부분의 핵융합 선진국들은 이 시기를 기준으로 핵융합 실증로 개발을 위한 주요 일정과 로드맵을 수립하고 핵융합에너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KSTAR의 건설과 운영, ITER 사업의 참여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핵융합 실증로 건설을 위한 핵심 기술을 적기에 확보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이미 돌입하였다. 핵융합 실증로가 완성되는 2050년 우리는 핵융합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진정한 인공태양 장치를 만나게 될 예정이다.


에너지 고갈과 탄소 중립 시대

우리의 미래를 여는 핵융합에너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핵융합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영국과 같은 나라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세부전략으로 세계 최초의 핵융합 실증로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매우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핵융합 스타트업들이 탄생하여 핵융합에너지 실현을 위한 도전적인 목표를 발표하기도 하며, 연일 핵융합 기술에 대한 투자금 유치 소식도 들려온다. 왜 전 세계는 핵융합에너지를 주목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핵융합에너지는 인류의 선결 과제인 에너지 관련 문제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융합에너지는 바닷물과 과학기술만 있다면 만들 수 있다. 화석연료처럼 연료가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지 않고, 풍력, 수력, 태양열처럼 자연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대용량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하여 공급할 수도 있다. 또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고 폭발과 같은 심각한 사고의 우려도 없다. 무엇보다도 발전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한 에너지이다.


이러한 완벽에 가까운 특징 때문에 그동안 핵융합에너지는 꿈의 에너지로 불려왔다. 꿈이라는 것은 완벽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실현되기 어렵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핵융합 에너지는 더 이상 꿈의 에너지가 아니다. 2050년 핵융합에너지 전력생산이라는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별 로드맵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다. 핵융합에너지와 함께하는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여러분 모두 마음껏 기대해보길 바란다.


이하나 선임행정원

이하나 선임행정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핵융합 전문연구기관인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 재직하면서, 영상, 글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 및 제작을 통해 대중들에게 핵융합에너지를 소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